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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모차를 끌며 / 김규동 (1925-)
    현대시/한국시 2009. 6. 20. 15:22

    유모차를 끌며 / 김규동 (1925-)

    <하나의 세상>에서


    그 신문사 사장은

    변변치 못한 사원을 보면

    집에서 아이나 보지 왜 나오느냐고 했다

    유모차를 끌며 생각하니

    아이 보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저귀를 갈고 우유 먹이는 일

    목욕 시켜 잠재우는 일은

    책 보고 원고 쓸 시간을

    군말 없이 바치면 되는 것이지만

    공연히 떼쓰거나

    마구 울어댈 때는 귀가 멍멍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이 되니

    이 경황에 무슨 노랜들 부를 수 있겠느냐

    순수가 어디 있고 고상한 지성이 어디 있나

    신기한 것은

    한마디 말도 할 줄 모르는 것이

    때로 햇덩이 같은 웃음을

    굴리는 일이로다

    거친 피부에 닿는 너의 비둘기 같은 체온

    어린것아 네게 있어선

    모든 게 새롭고 황홀한 것이구나

    남북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방실거리고 자랄

    미국도 일본도 소련도

    핵폭탄도 식민지도 모르고 자랄

    통일조선의 아이들은 생각한다

    이 아이들 내일을 위해선

    우리네 목숨쯤이냐 초로 같은 것이면 어떠냐

    탄환막이라도 되어주마

    우리를 딛고 일어서라

    우리 시대는 틀렸다지만

    너희들은 기어이 통일된 나라 만나리라

    숨막히는 열기 속에 쫓겨 달리는

    차량의 물결을 스쳐

    미친 바람 널실대는 거리를

    삐걱이는 유모차를 끈다

    통일을 만날 어린것을 태운

    유모차 끄는 일은

    시 쓰는 일을 미뤄두고라도

    백번 눈물겹고 신나는 노동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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