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되기/인문학

(인문학)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7. 13. 11:04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는 글쓰기 교실의 선생님이 추천하셔서 읽고 있다. 선생님의 얘기를 듣기 전에는, 나는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만 알고 있었다. 이런 책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러 챕터가 있는 데, 그 중에서 "나는 왜 쓰는가" 라는 챕터에서 필요한 부분만 정리해본다.

 

   (274-275쪽)

글쓰는 사람이 단어나 문구의 효과에 대해 의문이 들 때 참고할 원칙.

(1) 익히 아는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안 쓴다.

(3) 빼도 지장 없는 단어는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으면 수동태를 안 쓴다.

(5) 외래어, 과학용어, 전문용어는 상응하는 일상어가 있으면 절대 안 쓴다.

(6) 너무 황당한 표현 쓰려면 이상 원칙을 깬다.

 

   (281쪽)

실생활의 모든 즐거움을 다 죽여버리면 우리 자신을 위해 준비해야 할 미래는 과연 어떤 식일까? 사람이 봄이 돌아오는 걸 즐길 수 없다면, 노동력을 줄여주는 유토피아에선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나무나 물고기나 나비나 두꺼비에 대한 어린 시절의 애정을 간직함으로써 보다 평화롭고  상식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가 밝힌 글을 쓰는 동기 혹은 이유는 다음과 같이 4가지이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것,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둘째,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내 경우는 여기에 해당된다. 내가 2008년에 시에 빠지게 된 것은 안도현 시인의 시와 연애하는 법이란 칼럼을 통해서인데, 그 알맹이는 아름다움이었다. 시라는 짦막한 글 속에서 아름다움을 본 것이고, 남자가 아름다운 여성 앞에 넋을 잃고 바라보듯 나는 시 앞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여성이 서 있는 걸 본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단박에 시와 사랑에 빠졌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금은 좀 시들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시를 좋아한다.

 

셋째,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내 개인적 의견으로는 사마천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나, 생각한다..

 

넷째, 정치적 목적.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나 목절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식이 되었든 어떤 이념이나 이와 관련된 운동을 하는 경우가 해당될 것이다. 과거에 386세대의 운동권, 요즘 페미니즘, 세상의 변혁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글이 해당될 것이다.

(289-300쪽)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 (300쪽)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300쪽)

 

   (367쪽-)

 그가(셰익스피어)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주로 언어를 통해서다. 셰익스피어 자신이 언어의 음악에 얼마나 심취했는지는 피스톨의 대사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피스톨이 하는 말은 대부분 무의미하지만, 대사 한줄 한줄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대단히 수사적인 운문임을 알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머릿속엔느 울림이 큰 난센스 시가 끊임없이 솟구쳤을 것이다. "큰물은 흘러넘치고, 아귀는 악을 쓰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