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 최승자 시인(1952-)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8. 24. 21:28

아래의 시는 8월 22일 목요일 라디오 방송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 최승자 시인(1952-)

 

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그러면 내 심장 속 새 집의 열쇠를 빌려드릴게요.

 

내 몸을 맑은 시냇물 줄기로 휘감아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당신 몸속을 작은 조약돌로 굴러다닐게요.

 

내 텃밭에 심을 푸른 씨앗이 되어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당신 창가로 기어올라 빨간 깨꽃으로

까꿍! 피어날게요.

 

엄하지만 다정한 내 아빠가 되어 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너그럽고 순한 당신의 엄마가 돼드릴게요.

 

오늘밤 내게 단 한 번의 깊은 입맞춤을 주시겠어요?

그러면 내일 아침에 예쁜 아이를 낳아 드릴게요.

 

그리고 어느 저녁 늦은 햇빛에 실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에

저무는 산그림자보다 기인 눈빛으로

잠시만 나를 바래다주시겠어요?

그러면 난 뭇별들 사이에 그윽한 눈동자로 누워

밤마다 당신을 지켜봐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