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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이 냉동고를 열어라 / 송경동현대시/한국시 2009. 7. 1. 17:21
"이 냉동고를 열어라 " -1차 천주교 사제 비상시국미사에 붙이는 시 2009년 06월 23일 (화) 10:06:52 송경동 umokin@hanmail.net ▲ 용산현장 제대 위에 단정하게 성작과 성반이 놓여 있다. (사진/한상봉)
불에 그을린 그대로
150일째 다섯 구의 시신이
얼어붙은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갇혀 있다
까닭도 알 수 없다
죽인자도 알 수 없다
새벽나절이었다
그들은 사람이었지만 토끼처럼 몰이를 당했다
그들은 사람이었지만 쓰레기처럼 태워졌다
그들은 양민이었지만 적군처럼 살해당했다
평지에선 살 곳이 없어 망루를 짓고 올랐다
35년째 세를 얻어 식당을 하던 일흔 둘 할아버지가
25년, 30년 뒷골목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할머니가
책대여점을 하던 마흔의 어미가
24시간 편의점을 하던 아내가
반찬가게를 하던 이웃이커피가게를 하던 고운 손이
우리의 처지가 이렇게 절박하다고
호소의 망루를 지었다▲레아 갤러리 옥상에서 나부기는 깃발. 사람과 그리고 새....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사람들... (사진/한상봉)
돌아온 것은 대답없는 메아리였고
너무나도 신속한 용역과 경찰의 합동작전이었다
6명이 죽고 십여 명이 다치고
또 십수 명이 구속되었다
이웃이 이웃을 죽였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이었다
단지 쓰레기를 치웠을 뿐이니
단지 말을 잘 듣지 않는 짐승 몇을 해치웠을 뿐이니
경찰과 용역깡패들과 정부와
대통령은 아무런 죄도 없었다
그렇게 6명이 죽고도
이 사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수의 시민들이 차벽과 연행에 맞서
양심의 촛불을 들고
추운 겨울부터 더운 초여름까지
어둔 거리에서 쫓기며 항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 역시 수배되거나, 체포되거나, 소환당했다
용산참사를 말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다
용산참사를 추모하는 것조차 금지당했다
유가족들이 다시 경찰에 밟히고 희롱당했다
하루 이틀 날짜가 쌓여 넉달이 되었다
하, 유가족들의 피눈물이 넉달이 되었다
하, 이웃들의 원통에 찬 한숨이 넉달이 되었다
하, 죽어서도 무슨 죄를 그리 지어
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날이 넉달이 되었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용산에서 아직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데
열린 사회라고 한다
억울한 죽음들이 넉달째 차가운 냉동고에 감금당해 있는데
살만한 사회라고 한다▲ 명동에서 출발한 사제들을 기다리며 송경동 시인이 추모시를 목청 돋구어 읊고 있다. (사진/한상봉)
150일째 다섯 구의 시신이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있다
150일째 우리 모두의 양심이
차가운 냉동고에 억류당해 있다
150일째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차가운 냉동고에 처박혀 있다
150일째 이 사회의 역사가 전진하지 못하고
차가운 냉동고에 얼어붙어 있다
150일째 우리 모두의 분노가
차가운 냉동고에서 시퍼렇게 얼어붙어가고 있다
150일째 우리 모두의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냉동고에서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는 우리의 용기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의 권리가 묶여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것인 민주주의가 볼모로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소망인
평등과 평화와 사랑의 염원이 주리 틀려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거기 너와 내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사랑이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연대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정당한 분노가 갇혀 있다
제발 이 냉동고를 열자
너와 내가, 당신과 우리가
모두 한 마음으로 우리의 참담한 오늘을
우리의 꽉 막힌 내일을
얼어붙은 시대를열어라. 이 냉동고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송경동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그동안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특히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더불어 농성장을 떠나지 않았으며, 최근 용산참사가 발생하자 범대위가 참여해 왔다. 시집으로 <꿀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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