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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정지용 (1902-1950)현대시/한국시 2009. 7. 5. 13:38
향수 / 정지용 (1902-1950)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朝鮮之光>> 65호, 1927. 3
인용: <<정지용전집1. 시>>, 민음사, 2008(개정판 6쇄), 49-50쪽.
* 지줄대는-‘지절대는’의 사투리. 연달아 수다스럽게 지껄이다.
* 해설피-느리고 어설프게.
* 함추름-‘함초롬’의 사투리. 가지런하고 고운 모양.
* 석근 별-드문드문 돋아난 별.
* 서리 까마귀-가을까마귀. 가을에 서리가 내릴 때 모여드는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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