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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 / 이형기
    현대시/시창작 관련 2009. 11. 1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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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 / 이형기

    시를 쓰는 마음은 사물을 관조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상상적으로 변용시키게 된다. 상상력은 사물을 상식이란 이름의 인습의 거울에 비친 대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는 태도로 그러니까 여태까지와는 달리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만큼 그렇게 새로워진 사물은 이미 낯설게 변용되어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인습의 거울에 비친 대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을 지각(知覺)의 자동화(自動化)현상이라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여기 있는 이 볼펜이나 저기 있는 저 소나무를 특별한 의식적 노력없이 대뜸 조건반사적으로 볼펜 또는 소나무라고 알아본다. 그것은 오랜 인습이 길러낸, 자동화된 지각의 소산이다. 이러한 지각의 자동화 현상은 우리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참으로 넓고 깊게 퍼져 있다.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원리, 그것이 바로 지각의 자동화인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인간의 삶은 편리하게 영위되어 나간다. 만일 우리가 이 볼펜이나 저 소나무를 자동적으로 그렇게 지각하지 않고,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를 일일이 생각한 다음 그렇게 알아보게 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가? 그것은 단순히 불편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괴해 버리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지각의 장동화는 인간의 삶이 현재의 모양대로 존속될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긍정적 원리라고 규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측면 때문에 우리가 모든 사물을 오직 자동화된 지각의 그 인습적 시각으로만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의 삶과 세계는 언제나 과거를 되풀이할 뿐 진보나 발전으로 통하는 새로움은 성취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삶은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사물과의 교섭과정이다. 사물을 새롭게 바라본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그 사물과의 새로운 교섭, 즉 새로운 삶을 뜻한다. 새로운 삶이란 창조적 내포를 갖는 삶이다. 그리고 우리들 개개인의 삶이 새로운 창조성을 획득해 나간다면 인류 전체의 문화와 역사도 그에 비례하는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가 그 첫걸음에서부터 우리에게 요구하는 지각의 자동화를 거부하는 상상적 시각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는 핵심요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자동화된 지각의 안경을 벗고, 그러니까 상상력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면 여태까지는 보이지 않던 그 사물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사물을 보는 시각의 차이 : 그 아홉 가지 유형>

    그러면 여기서 우리들 자신은 사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반성적으로 점검해보자. 지금 우리 앞엔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고 가정한다. 그 나무를 바라보는 시각은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 차이를 단계화해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이 나올 수 있다.

    ① 나무를 그냥 나무로 본다.
    ② 나무의 종류와 모양을 본다.
    ③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④ 나무의 잎사귀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⑤ 나무 속에 승화되어 있는 생명력을 본다.
    ⑥ 나무의 모양과 생명력의 상관관계를 본다.
    ⑦ 나무의 생명력이 뜻하는 그 의미와 사상을 읽어본다.
    ⑧ 나무를 통해 나무 그늘에 쉬고간 사람들을 본다.
    ⑨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위에 든 아홉가지 유형 중에서 당신의 경우는 어느 단계에 속하고 있는가?

    ①에서 ④까지는 나무의 외형적 관찰이지만, 일상적 상식적 차원에 있어서의 우리는 그나마도 ①과 ②정도의 눈으로 나무를 보고 있다. ③과 ④는 그보다 한걸음 앞선 태도이긴 하지만 역시 나무의 외형적 관찰이며, 따라서 그다지 깊이있는 관찰이라 할 수가 없다. ⑤에서 ⑦까지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나무의 외형이 아니라 그 내면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일상적 상식적 차원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무의 모습이 우리 앞에 드러난다. 나무의 생명력이라든지 또 그 생명력의 의미나 사상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대상인 것이다. 한데도 이 단계에서는 그것들이 모두 나무의 모양으로 형상을 얻고 있다. 그리하여 생명력이나 사상으로 바뀌어진 나무의 그 변용은 물론 상상력의 소산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한 나무는 그 의미의 측면에 있어서도 깊이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⑧과 ⑨의 단계에 이르면 나무는 다시금 비약적 변용을 이루게 된다. ⑤∼⑦의 단계에 있어서는 그래도 아직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나무가 이번에는 자리까지 옮기게 되는 것이다. 「나무 그늘에 쉬고간 사람들」을 보게 될 때의 나무는 지금의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이미 다른 자리에 서 있다. 그곳은 그렇게 쉬고간 사람들이 쉬는 그동안의 이런 일 저런 일을 생각해 본 인생의 갖가지 사연이 얽혀 있는 자리인 것이다.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보는 ⑨의 단계도 나무가 보다 발전적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임이 분명하다. 연장선을 그어 확대시키면 인생 만사와 우주의 삼라만상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이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인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이처럼 광대한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 기적을 낳는 원동력이 상상력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상상력을 누구보다도 많이 가진 사람이다.
    시인이 아니라도 이 상상력은 사람들에게 인류 전체의 문화와 역사를 변혁시킬 만큼 엄청난 발견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발견이란 여태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본다는 뜻에 다름아닌 것이다.


    위의 글은 (주)문학사상사 이형기 지음 <현대시 창작교실-당신도 시를 쓸 수 있다>에서 발췌

    출처 : 열 린 바 다
    글쓴이 : 양현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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