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시는 오늘 밤 라디오 방송 《청하의 볼륨을 높여라》에서 소개되었던 시이다. 보문동 – 권대웅 시인 미음자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쌀을 씻는 어머니 어깨 위로 뿌려지는 찬물처럼 가을이 왔다반쯤 열린 나무 대문을 밀고 삐그덕 들어오는 바람마당에 핀 백일홍 줄기를 흔들며 목 쉰 소리를 낸다곧 백일홍이 지겠구나 부엌으로 들어가는 어머니 뒷모습이 아득하다툇마루에 놓여 있던 세발자전거햇빛이 너무 좋아서 그 곁에서 깜빡 졸고 일어났을 뿐인데백발이 되었다기와지붕 너울 너머로 날아가는 나뭇잎들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구름들꽃잎에 섞인 빗방울의 날들 어둑해지는 처마 밑으로 우수수 떨어진다지금 여기가 어디지? 몇 세기를 살고 있는 것이지? 돌아보면 어둑어둑 텅 빈 마당 어머니가 꼭 잠가 놓고 가지 않은 수돗물 소리 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