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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펌>사제와 주교들이 청문회에 선다면?
    아름다운 인생/종교 2010. 11. 5. 10:58

    사제와 주교들이 청문회에 선다면?
    [기고-함세웅]
    2010년 11월 02일 (화) 09:23:16 함세웅 .

    국회 청문회와 뻔뻔한 수구언론

    얼마전 우리는 TV와 신문을 통해 총리와 장관 후보 등에 대한 국회청문회 소식을 자세히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후보자들은 모두 나름대로 그 영역에서는 학력, 경력 등이 화려하고 또 상당히 인정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청문회 증언을 보고나면 위장전입, 탈세, 병역미필 등 갖가지 불법을 자행한 저런 사람들이 어떻게 고위직 후보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하는 큰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미국 국회청문회를 나름대로 손꼽고 있습니다. 미국 국회의 경우 무엇보다도 거짓말과 양심에 반한 발언은 이른바 위증에 해당되며 끝까지 책임을 추궁하고 있습니다. 국회와 언론 등 미국사회는 진실과 정직이 공직자의 우선적 덕목이며 조건임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소리는 요란한데 솜방망이식일 뿐 그때만 넘기면 그만이고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은 이중잣대의 표본으로 정론을 망각한 한낱 광고지에 불과합니다.

    사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위장전입, 병역미필 등의 흔적만 보여도 온갖 논리와 궤변으로 후보자를 깎아내리며 흠집을 내고 후보자로서 부적합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 현 정권이 들어서자 전 정권 때보다 두 배, 세 배, 네 배의 흠이 있는 후보자에 대해서도 별 언급을 하지 않고 심지어는 감싸는 등 참으로 철면피 같은 모순적 행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너무나 뻔뻔한 부도덕한 수구언론의 현주소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수구언론은 근원적으로 속죄하고 쇄신해야 합니다. 어쨌든 요사이 우리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의 실력이 예전보다는 크게 향상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국회의 청문회와 비교하면 더욱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후보자의 사생활을 들추어내기보다는 그 후보자의 능력, 공공책임감, 역사의식, 민족의식, 무엇보다도 정의와 양심 등 인간의 기본적 가치관과 사회적 책무감에 대하여 진지하게 묻고 후보자의 인격성을 확인하고 바르게 검증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청문회를 통해 후보자들의 모습의 거짓과 위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때로는 비웃고 욕하고 심지어는 온갖 욕설까지 더 퍼붓곤 합니다.

    주교 선임을 위한 사목검증 청문회를 꿈꾸며

       
    ▲ 함세웅 신부
    그런데 문득 그 순간에 "이 사람아, 너는 과연 어떠한가? 과연 네가 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신학교 때의 양심성찰도 떠올랐습니다. 나아가 공동참회의 교훈과 함께 언젠가 하느님 심판대 앞에서 벌거벗은 채 단독자로 엎드려 죄인임을 고백해야 할 그날의 모습을 생각하며 묵상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남의 눈의 티끌은 잘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마태 7,4) 부끄러운 죄인들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가톨릭에 대한 평가가 타 종교보다는 조금 낫다는 통계 수치가 언론에 보도되기는 했지만 그것도 결국 도토리 키재기일 뿐입니다. 만일 사제와 주교들을 청문회에 세운다면 어떻겠습니까?

    양심성찰의 길잡이를 따라 하나씩 질문한다면, 또 십계명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씩 캐묻는다면, 그리고 7죄종을 열거하며 계속 추궁해 간다면 과연 사제와 주교들의 답변이 어떠할지 상상해보면서 함께 깊이 성찰합니다.

    사제들은 고백과 상담, 미사와 전례집전을 통해 성무를 집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타성에 젖곤 합니다. 신학생 시절, 서품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새삼 종말론적 결단의 자세를 되새기며 양심성찰을 통한 청문회에 임합니다.

    주교 선임을 위한 사목검증 청문회를 꿈꾸며 사제들은 체제상 주교에게 종속되어 있고 주교들은 교황에게 종속되어 있는 이른바 현재의 중앙집권체제는 사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복음, 사도행전,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 등 신약성경 그 어느 하나에도 기초하지 않은 성경 밖의 문화와 정치 제도에 기인하고 있는 역사적 산물일 뿐입니다.

    교회사를 통해 익히 배운 바와 같이 가톨릭교회는 로마제국 300여년의 긴 박해기간 동안 평등과 사랑에 기초한 아름다운 소박한 공동체, 무엇보다도 순교와 증언에 기초한 형제자매애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이른바 종교관용조치 이후 기적과 같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에 가톨릭교회 공동체는 큰 기쁨을 만끽하긴 했지만 오히려 퇴행했다는 교회사적 반성이 있습니다.

    4-5세기에 아리우스사상 등으로 인해 많은 갈등과 혼란을 겪은 교회공동체는 스스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더 많은 경우에 로마황제의 권력에 업혀 이른바 제국교회로 변질되었다는 쇠퇴이론을 우리는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박해 때의 지하교회가 권력의 제국교회로 변신한 모습을 신학자들은 쇠퇴와 타락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가톨릭의 체제는 이때부터 로마제국의 문화와 동화되고 특히 콘스탄티누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수도를 옮긴 뒤 로마의 주교는 바로 로마황제의 역할을 본의든 아니든 자연스럽게 이어받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의 잇단 종언 끝에 로마 주교는 교회공동체의 최고 사목자일 뿐 아니라 왕과 황제 위에 군림하는 신권자(神權者)로 하느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형성된 교회체제를 우리는
    교계제도라고 부르며 교리로 선언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비본질이 오히려 본질을 밀어낸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가톨릭체계 곧 교계제도의 허상입니다.

    가톨릭의 본 모습, 예수님 교회의 본 모습을 찾기 위해 성경청문회, 역사청문회, 신학청문회를 열었으면 하는 꿈을 저는 지니며 교회의 모순적 별칭인 "정결한 매음녀"(casta meretrix)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현행 교구제도도 바로 로마제국의 분할통치와 중세봉건주의의 유산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 현실에서는 근원적으로 재검토하고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할 제도입니다. 교구장 주교의 독선적 인사권, 전례 때의 큰 관과 지팡이, 빨간양말, 둥근모자 등 이 모든 것은 이제는 청산해야 할 중세 봉건시대의 전근대적 유물입니다.

    무엇보다도 현행 주교 선임 방법을 근원적으로 바꿔 4년 또는 8년의 임기제로 운영해야 합니다. 교구장 주교는 일종의 관할권자이며, 교회사목권은 함께 나누어야 할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국성공회의 예범처럼 신자, 수도자, 사제들로 주교선임인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사목청문회에서 주교후보자를 꼭 검증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총과 권력의 분배원리입니다.

    다니엘 예언자와 같이 묵시론적 희망을 꿈꾸며, 3년째 안식년에 있는 전종훈 신부님과 지금도 매일 명동성당에서 하루 종일 기도하고 계신 문정현 신부님을 기억하며 이글을 마무리합니다. 아멘.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함께하는 사목'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함세웅 /신부, 청구성당,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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