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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 고정희현대시/한국시 2011. 9. 2. 19:09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 고정희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 밟습니다
내가 위로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고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날 분별없이 뿌린 말의 씨앗,
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
말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란
나이를 제대로 꽃피우기란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 락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 없는
내 사지에 돌을 눌러둘 수는 없습니다
어느 카페에서 보았는데마음에 들어 여기 옮겨본다.
특히 이 달 9월에 음미하면 좋을 듯 하다.
또한 중년기에 읽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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