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詩) 성탄전야 - 곽재구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3. 1. 26. 15:12

성탄전야 - 곽재구 시인

 

소년이 눈보라속을 걷는다

숲속의 작은 통나무집

눈쌓인 밤은 푸르다

소년이 통나무 집안으로 들어선다

성냥을 그어 램프에 불을 붙인다

창틀 앞에 아주 작은 눈사람이 엎드려 있다

소년이 눈사람에게 다가가 꼬옥 안아 준다

사흘 내내 기다렸니

이런 아무것도 안 먹었구나

소년이 눈사람에게 한 스픈 물을 먹인다

눈사람의 몸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다

소년이 눈사람을 안아 식탁 위로 옮긴다

성냥을 그어 벽난로에 불을 붙인다

벽난로에서 밀감 빛 크리스마스 캐럴이 쏟아져 나온다

소년이 턱을 괴고 눈사람을 바라보는 동안

눈사람은 조금씩 녹아 고슴도치가 된다

고슴도치도 턱을 괴고 소년을 본다

이번에 도시로 간 일 잘 되었단다

이제 혼자 남겨두고 가지 않을 게

창 밖에 눈보라가 날리고

밤은 성마태수난곡처럼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