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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눈 덮인 새벽 - 도종환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9. 4. 12:43
눈 덮인 새벽 - 도종환 시인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놓고 새벽은
산허리로 물러나 앉은 채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헐벗은 나뭇가지도 텅 빈 들판도
감히 손대기 어려운 고운 풍경으로 바꾸어놓고
고요히 호흡을 가다듬는 초겨울 새벽에는
나도 조건 없이 남을 덮어주고 싶습니다
용서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 눈 덮인 들판처럼 넓고 깨끗해져
그러는 건 아니고 지난날
용서받고 싶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틀거리며 걸어온 발자국을
함박눈이 밤새 덮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끄럽게 돌아선 골목길
있어야 할 어려운 자리를 지키지 않고
내내 마음 무겁던 나날들과
지키지 못한 언약들도
눈처럼 다 덮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도종환 시집 <슬픔의 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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