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송가 – 여자를 위하여 – 이기철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4. 6. 11:09

아래의 시도 시집을 읽다가 심쿵했던 시다.

 

송가 여자를 위하여 이기철 시인

 

너를 이 세상의 것이게 한 사람이 여자다

너의 손가락이 다섯 개임을 처음으로 가르친 사람

너에게 숟가락질과 신발 신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 여자다

생애 동안 일만 번은 흰 종이 위에 써야 할

이 세상 오직 하나뿐인 네 이름을 모음으로 가르친 사람

태어나 최초의 언어로, 어머니라고 네가 불렀던 사람이 여자다

네가 청년이 되어 처음으로 세상에 패배한 뒤

술 취해 쓰러지며 그의 이름 부르거나

기차를 타고 밤 속을 달리며 전화를 걸 사람도 여자다

그를 만나 비로소 너의 육체가 완성에 도달할 사람

그래서 종교와 윤리가

열 번 가르치고 열 번 반성케 한

성욕과 쾌락을 선물로 준 사람도 여자다

그러나 어느 인생에도 황혼은 있어

네 걸어온 발자국 헤며 신발에 묻은 진흙을 털 때

이미 윤기 잃은 네 가슴에 더운 손 얹어 줄 사람도 여자다

너의 마지막 숨소리를 듣고

깨끗한 베옷을 마련할 사람

그 겸허하고 숭고한 이름인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