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어떤 주례사 – 안홍열 시인(1949-)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5. 16. 21:06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어떤 주례사 안홍열 시인(1949-)

 

주례를 서기 위해
과거를 깨끗이 닦아 봉투에 넣고
전철을 탔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노부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학동 같다
그렇다, 부부란 키를 맞추는 것이다
키를 맞추듯 생각도 맞추고
꿈도 맞추고
목적지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내릴 역에 다다르면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말없이 함께 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