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겨울 초상 - 권오표 시인(1950-)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6. 8. 18:51

아래의 시는 오늘 시집을 읽다가 발견한 시이다. 참으로 구수하고 정겹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들어간 시이다.

 

겨울 초상 - 권오표 시인(1950-)

 

이번만은 기어이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듯

북창(北窓)을 할퀴는 눈보라에 산골 마을은

잠들지 못하네

맞장 한번 떠보겠노라고 등뼈를 곧추세운 대숲은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지 연신 가쁜 숨비소리를 내네

이장집 영감님은 새 달력에서

이태 전에 먼저 간 할멈의 제삿날을 더듬고

마을 젊은이들은 사랑방에 모여

하 수상한 시절을 안주 삼아

밤 깊도록 섯다 패를 돌리네

눈 덮인 빈들에서 벼 포기는 단발령에 잘린 상투처럼

연대를 이루어 전열을 가다듬는데

나는 앞강이 쩡쩡 우는 소리를 들으며

식어 가는 구들장에 엎드려

통속 소설에 킬킬대거나 수음을 하는 일

지난 밤 꿈에 자작나무 숲으로 사라진 은빛 여우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일

 

- 권오표 시집 <너무 멀지 않게> 중에서 - 

 

** 시인 소개 **

- 1950년 전북 순창 출생

- 원광대 국문과 졸업.

- 전주 완산고에서 30여 년 교사 생활

- 시집으로 <여수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