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손에 대한 예의 – 정호승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6. 14. 11:02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손에 대한 예의 정호승 시인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에 입을 맞출 것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 년에 한 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들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 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 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 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 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