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농부는 바람에 백기를 들지 않는다 – 차옥혜 시인(1945-)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6. 17. 18:06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농부는 바람에 백기를 들지 않는다 차옥혜 시인(1945-)

 

콩밭에는 콩만

고추밭에는 고추만

심고 길러야 하는 농부의 밭에

바람은 수시로 와

쇠비름, 클로버, 새포아풀, 애기똥풀

엉겅퀴, 환삼덩굴, 메꽃, 강아지풀 ……

잡초를 옮겨놓는다

바람의 심술에

아니 세상 모두가 제 땅이고

제가 경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람의 아집 때문에

농부는

손가락이 아프며 등뼈가 굽고

옆구리가 결리며 무릎이 쑤신다

그래도 농부는 바람에

백기를

들지 않는다 들 수 없다

맞서 뚫고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