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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이현주 작가 시 "어둠 속에 빛이 있다"외
    현대시/한국시 2026. 2. 1. 08:31

     

    최근에 우연히 이현주 목사님(1944-)의 시집을 읽었다. 아주 오래전에 나온 책이다. 지금은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1989년 종로서적에서 출간한 목사님의 시집 <뿌리가 나무에게>이다. 나는 이 시집에서 어둠에 대한 목사님의 통찰에 감명을 받았다. 이분도 십자가의 성 요한처럼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갔다는 점을 시집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목사님 말씀처럼, 어둠이 있어야 밤하늘의 아름다운 무수한 별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음에 와닿은 시 몇 편을 아래에 소개한다.

     

    어둠 속에 빛이 있다 요한복음 11-4이현주 목사

     

    어둠 속에 빛이 있다

    끝내 헤어날 수 없는 이둠 속에

     

    빛은 어둠의 포로지만

    어둠은 제 포로를 가두지 못한다

     

    빛은 기쁨을 주고

    어둠은 뜻을 준다

     

    반짝하는 역사는 반짝하지만

    어둠의 깊은 품으로 숨어야 한다

     

    빛은 빠르게 간다, 그러나

    그 앞에는 언제나 어둠이 있다

     

    우리 생명의 반작이는 기쁨은

    어둠 속으로 뜻을 찾아 가라앉는다

     

    어미는 제가 낳은 자식과 끝없이 싸우나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미다

     

    이현주 시집 <뿌리가 나무에게> 중에서 -

     

     

    새해 아침의 비나리 이현주 목사

     

    새해 새 날이 밝았습니다, 아버지

    해마다 주시는 새 날이 온 땅에 밝았습니다

     

    올해에는 하늘을 기르게 해주십시오

    우리 몸속에 심어 주신 하늘 싹 고이 길러

    마침내 하늘만큼 자라나

    사람이 곧 하늘임을 스스로 알게 해주시고

     

    칼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는

    칼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게 해주시고

    돈의 힘을 의지하는 이들에게는

    돈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게 해주시고

     

    부끄러운 성공보다 오히려

    떳떳한 실패를 거두게 하시고

    유명한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참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착한 일 하다가 지친 이들에게는

    마르지 않는 샘을 가슴 깊이 파주시고

    마음이 깨끗해서 슬픈 이들에게는

    다함없이 흐르는 맑은 노래 들려 주시고

     

    세상이 어둡다고 말하기 전에

    작은 촛불, 촛불 하나 밝히게 하시고

    솟아오른 봉우리를 부러워하기 전에

    솟아오른 봉우리를 솟아오르게 하는

    골짜기, 깊은 골짜기를 보게 하시고

    밤하는 별들을 우러르기 전에

    총총한 별과 별 사이

    가뭇없는 저 어둠, 어둠을 보게 하시고

    아름다운 꽃 나비 벌 희롱하기 전에

    뿌리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잎으로

    숨어 흐르는 수액(樹液)을 보게 하시고

     

    쓰러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대신에

    길 떠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시고

     

    올해에는 하늘을 품게 해주십시오

    가슴마다 작은 가슴마다

    우주만큼 큰 하늘을 품고

    한 발 두 발 세 발

    후회없는 날을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새해 새 날이 밝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하늘 싹 마침내 온누리 움텄습니다

     

    이현주 시집 <뿌리가 나무에게> 중에서 -

     

     

    밤의 은총 이현주 목사

     

    태양은 아침에 떠올라

    어둠을 몰아내고

    나로 하여금 나무를 보게 한다

    들과 작은 언덕과 수풀을 보게 한다

     

    밤은 태양의 등을 밀어

    빛을 삼키고

    나로 하여금 나무를 보지 못하게 한다

    들과 작은 언덕과 수풀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저 영원히 빛나는

    하늘의 별들을

    나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하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캄캄한 밤이다

    어둠만이 나의 눈길을 이끌어 별나라에 닿게 한다

     

    이현주 시집 <뿌리가 나무에게> 중에서 -

     

     

    뿌리가 나무에게 이현주 목사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 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

    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에서 까맣게 잊어도 좋다

     

    이현주 시집 <뿌리가 나무에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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