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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천공동체 짧은 방문기!
    아름다운 인생/아름다운 삶 2009. 7. 22. 23:11

    어디 다녀온 얘기를 짧게 하고자 한다. 적다보니 짧지않다.

     

    그저께 큰 마음 먹고 열차 타고 영성 공동체로 향했다. 간 이유는 나의 영성을 제고하기 위해서였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그런 공동체는 아니고 극소수의 관계자들이나 관심자들만 아는 그런 영성을 높이는 공동체다. 물론 가톨릭 공동체이고 책임자는 평신도 자매님이다. 그 책임자분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나는 월요일 오전 10시 57분 수원발 열차로 영천에 오후 2시 34분에 도착했다. 역전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내가 갈 곳 화산중학교 맞은편에 있는 천주교 화산공소로 가려고 차편을 알아봤다. 공동체 책임자분과 연락했을 때는 택시타고 오라고 했는데 역전의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니 거리가 대략 12키로니까 요금이 만이삼천원가량 나온다고 했다. 내가 가진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택시는 포기하고 버스로 가기로 하고 기차역에서 버스터미널까지 물어서 물어서 갔다. 거기서 얼마간 기다렸다가 화산중학 가는 버스를 탔다. 반 시간 걸려서 목적지에 내렸다.

     

    도착해서 구건물에서 아이들 노래소리가 들려 들여다 보니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수녀님한테 물어보니 공동체식구들은 경당에서 성체조배한다나... 그래서 나도 경당에 들어가 조배를 했다. 기도시간이 끝나자 공동체 일원인 어느 형제님이 내게 접근해 숙소로 데려가 갈아입을 옷 상의 2벌 하나는 긴소매로 목까지 올라오는 폴라티와 그 위에 바쳐입는 반팔 단추달린 겉옷 그리고 양말과 덧버선이었다. 거기다 작업용 장갑과 태양을 가리는 모자까지... 무슨 전문 농사꾼도 아닌데 복장은 완전히 전문가 복장... 기가 막혔다. 런닝셔츠만 입어도 더울 판에 완전 중무장을 하다니... 제초 작업시 벌레에 안 물리고 땀을 잘 흡수하니까 시간이 지마면 괜찮아진다고 하긴 하지만 내가 볼 때 이곳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그런데 작업할 때만 그런 복장을 하는 게 아니라 작업을 안 할 때도 아예 평상시 이 공동체에서 공동체 유니폼처럼 입는 거였다. 아무튼 난 이 복장 때문에 속으로 강한 거부감과 반발심이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중무장을 하고 한 시간 남짓 제초 작업을 했다. 다른 식구들과 함께. 경당 건물 주위를 삥 돌아가며 형제 자매들이 호미를 가지고 완벽하게 제초를 하는 거였다. 난 처음에 대강 대강 하다가 눈치를 보아하니 그럼 안 될 거 같아 그들처럼 따라했다. 슬슬 배가 고파왔고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자 종이 울렸다. 한 여섯시 반경이었다. 사제관 1층에 다들 모였다. 그날부터 2박3일간 어느 성당 초등부 산간학교가 경당 맞은편 구건물과 마당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사제관에서 숙식을 하는 거였다. 사제관에는 은퇴하신 신부님이 머물고 계신다.

     

    아무튼 다들 모였고 메뉴가 뭔가 했더니 죽이었다. 할아버지 신부님의 식사기도가 있었고 이어서 일동 모두 "우리모두 성인 성녀가 됩시다!"라는 구호를 복창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난 속으로 요즘도 성인성녀 된다는 표현을 쓰나!하며 의아했다. 내가 성인성녀 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닭이 들어가긴 했는데 들어간건지 안들어간 건지... 그리고 열무김치가 다 였다. 여기서 또 한번 실망했다. 난 밥 힘으로 사는 사람인데 죽이라니... 물론 과일은 넉넉했다. 과일 주스도 있었다.

     

    식사 끝나고 조금 여유 시간 보내고 일곱시 반부터 한 45분간 성무일도 저녁기도와 끝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8시반부터 취침시간... 원래 저녁식사후 미리 씻어야 하는데 몰라서 치나쳤기에 이 때 신부님방 화장실에서 씻었다. 이곳에서 속옷도 공동으로(성별 구별해서) 입는다고 했다. 삶으니까 문제없다고... 나도 새로 런닝과 팬티를 가라입었다. 그런데 평소 난 삼각팬티를 이용하던 사람이라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남자 형제들 4명은 신부님 침실 바로 이어지는 집무실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한 두세시간을 뒤척였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왔다갔다 했다. 처음엔 한 달 있을 생각을 했는데 삼일만 버티자! 아니다 내일 당장 가방 꾸려서 떠나자! 여긴 도저히 내가 적응하기 힘들다! 개인의 사적 공간도 없고, 의식주 모두 불편해서... 그리고 기도방식도 영 무식해보이고... 등등의 불만이 왔다갔다 했다. 나를 나의 육체적 필요를 들어주고 나서 영적인 필요를 들어주어야 하는데 이처럼 기본적인 요구마저 만나지 못하니 못견디겠는 거다. 결론은 내일 당장 아침 먹고 돌아가는 걸로...

     

    그 짧은 잠에 풍덩 빠졌는데 무슨 열차는 자주 다니던지... 취침시간 이후 깰 때까지 네 다섯 차례 기차가 지나간 거 같다. 결국 한 두시간 반 가량 자는둥 마는둥 하고 새벽 한시 사십분에 일어나 씻지도 않은 채 복장 갖추고 경당에 가서 두시부터 다섯시 반까지 제대 주변에 깔린 카페트 맨 바닥에서 다른 형제 자매들은 무릎 꿇고 묵주기도를 잘도 하는데 나는 처음 10분 앉았다가 너무 힘들어 그냥 앉아 있다보니 기도시간이 끝날때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졸았던 거 같다. 나중에 뒤에 의자에 앉아 졸걸 그랬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서 사제관 1층으로 돌아가서 또 기도 각자 하고 신부님 모시고 성무일도 아침기도와 낮기도를 함께 드리고 경당에 다시 가서 아침 미사를 봉헌했다. 이 때 어디선가 많은 수녀님들 한 2-30여 분이 참례하셨다. 일반 평신도들 소수 참석했는데 특이한 것은 흑인 청년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사 후 잠깐 얘기해보니 나이제리아에서 왔는데 이름이 써니라고 했고 근처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공동체 형제 자매들에 의하면 수도원에 갈 사람처럼 열심으로 기도하며 Imitation of Christ(준주성범)라는 가톨릭에서 예전부터 유명한 신심서적을 보고 있다고 한다.

     

    미사후 식사전 부책임자 자매님한테 유감스럽지만 난 오늘 아침 먹고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자세한 얘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책임자 자매님께 전화를 해보면 좋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연결시켜 주어 통화를 하며 유감스럽지만 여기랑 인연이 닿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식사 후 바로 공동체 식구들에게 열심히 생활하시라고 얘기하고 길을 떠났다.

     

    이번 일을 정리해보면, 나와 그 공동체의 생활 혹은 나의 삶의 패턴과 그 공동체의 시스템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체험이라 해도,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나의 적성이나 나의 시스템과 부합이 되어야 한다는 것 절실히 깨달았다. 의지와 생각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나에겐 맞는데 다른 사람에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 반대도 물론 가능하다. 그리고 같은 일이라도 나이와 처한 입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영적인 성장 위해서 육체를 잘 돌보는 일도 필요하다. 뭐 이렇게 대충 정리할 수 있을 거 같다. 내게는 이번 경우가 뜨악! 하는 체험이었지만 나름 의미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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