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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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장 넓은 길 - 양광모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1. 11. 20:30
양광모 시인의 시 일부가 2024학년도 수능 필적 확인 문구로 나왔다. 그 시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본래는 당시에 본 블로그에 소개하려고 했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오늘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작년에 쓰던 수첩을 뒤져, 시인의 이름을 알아내고, 다시 인터넷을 뒤져 시의 전문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모 매체에 실린 양광모 시인의 글 속에 위 시가 나온다. 그 링크는 아래와 같다. 아무튼 그래서 저녁 먹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도서관에 소장된 양광모 시인의 시집 전부인 6권을 빌릴 생각이었으나, 기존에 대출 중인 책이 이미 5권이 있어 나머지 1권은 못 빌리고 다음에 빌리기로 하고 돌아왔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대출 권수가 최대로 10권이다. 링크: https://www.joongang.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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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오월은 내게 - 신경림 시인(1935-)현대시/한국시 2024. 1. 11. 14:18
오월은 내게 - 신경일 시인 오월은 내게 사랑을 알게 했고 달 뜨는 밤의 설레임을 알게 했다 뻐꾹새 소리의 기쁨을 알게 했고 돌아오는 길의 외로움에 익게 했다 다시 오월은 내게 두려움을 가르쳤다 저잣거리를 메운 군화발 소리 총칼 소리에 산도 강도 숨죽여 웅크린 것을 보았고 붉은 피로 물든 보도 위에서 신조차 한숨을 쉬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오월에 나는 증오를 배웠다 불 없는 지하실에 주검처럼 처박혀 일곱 밤 일곱 낮을 이를 가는 법을 배웠다 원수들의 이름 손바닥에 곱새기며 그 이름 위에 칼날을 꽂는 꿈을 익혔다 그리하여 오월에 나는 복수의 기쁨을 알았지만 찌른 만큼 찌르고 밟힐 만큼 밟는 기쁨을 배웠지만 오월은 내게 갈 길을 알게 했다 함께 어깨를 낄 동무들을 알게 했고 소리쳐 부를 노래를 알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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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새벽 안개 - 신경림 시인(1935-)현대시/한국시 2024. 1. 11. 14:07
새벽 안개 - 신경림 시인 사랑을 배우고 미움을 익혔다 이웃을 만나고 동무를 사귀고 그리고 더 많은 원수와 마주쳤다 헛된 만남 거짓 웃음에 길들여지고 헤어짐에 때로 새 힘이 솟기도 했으나 사랑을 가지고 불을 만드는 대신 미움을 가지고 칼을 세우는 법을 먼저 배웠다 법석대는 장거리에서 저무는 강가에서 이제 새롭게 외로움을 알고 그 외로움으로 노래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 노래로 칼을 세우는 법을 배우고 그 칼을 가지고 바람을 재우는 법을 배운다 새벽 안개 속에서 다시 강가에서 -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실천문학의 시집 50, 신경림 시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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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산에 대하여 - 신경림 시인(1935-)현대시/한국시 2024. 1. 9. 23:24
산에 대하여 - 신경림 시인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히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즛 따뜻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처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나무 찰피나무며 모싯대 개쑥에 덮여 곤줄박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죽일 듯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다가도 칡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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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강물을 보며 - 신경림 시인(1935-)현대시/한국시 2024. 1. 9. 23:07
강물을 보며 - 신경림 시인 어떤 물살은 빠르고 어떤 물살은 느리다 또 어떤 물살은 크고 어떤 물살은 작다 어떤 물살은 더 차고 어떤 물살은 덜 차다 어떤 물줄기는 바닥으로만 흐르고 어떤 물줄기는 위로만 흐른다 또 어떤 물줄기는 한복판으로만 흐르는데 어떤 물줄기는 조심조심 갓만 찾아 흐른다 뒷것이 앞것을 지르기도 하고 앞것이 우정 뒤로 처지기도 한다 소리내어 다투기도 하고 어깨와 허리를 치고 때리면서 깔깔대고 웃기도 한다 서로 살과 피 속으로 파고들어가 뒤엉켜 하나가 되기도 하고 다시 갈라져 따로따로 제 길을 가기도 한다 때로 산골짝을 흘러온 맑은 냇물을 받아 스스로 큰물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을 헤집고 온 더러운 물을 동무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다리 밑도 기나고 쇠전 싸전도 지난다 산과 들판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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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나무에 대한 예배 - 황지우 (1952~ )현대시/한국시 2024. 1. 9. 17:00
아래의 詩는 오늘 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소나무에 대한 예배 - 황지우 (1952~ )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지표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건목(建木);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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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희망에 대하여 - 이상국 시인(1946-)현대시/한국시 2024. 1. 8. 23:45
아래의 詩는 오늘 아침 에서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詩이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희망에 대하여 - 사북에 가서 - 이상국 시인 그렇게 많이 캐냈는데도 우리나라 땅속에 아직 무진장 묻혀 있는 석탄처럼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을 다 써버린 때는 없었다 그 불이 아주 오랫동안 세상의 밤을 밝히고 나라의 등을 따뜻하게 해주었는데 이제 사는 게 좀 번지르르해졌다고 아무도 불 캐던 사람들의 어둠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섭섭해서 우리는 폐석더미에 모여 앉아 머리를 깎았다 한번 깎인 머리털이 그렇듯 더 숱 많고 억세게 자라라고 실은 서로의 희망을 깎아주었다 우리가 아무리 퍼 써도 희망이 모자란 세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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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겨울 초대장 – 신달자 시인(1943-)현대시/한국시 2024. 1. 8. 23:40
겨울 초대장 – 신달자 시인 당신을 초대한다.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당신. 그 빛나는 눈으로 인생을 사랑하는 당신을 초대한다. 보잘 것 없는 것을 아끼고 자신의 일에 땀 흘리는, 열심히 쉬지 않는 당신의 선량한 자각을 초대한다. 행복한 당신을 초대한다. 가진 것이 부족하고 편안한 잠자리가 없어도 응분의 대우로 자신의 삶을 신뢰하는 행복한 당신을 기꺼이 초대한다. 눈물짓는 당신. 어둡게 가라앉아 우수에만 찬 그대 또한 나는 초대한다. 몇 번이고 절망하고 몇 번이고 사람 때문에 피 흘린 당신을 감히 나는 당신을 초대하려 한다. 출발을 앞에 둔 자. 어제까지의 시간을 용서받고 새로운 시작에 발을 떼어놓는 당신을 나는 빼어 놓을 수 없다. 사랑을 하는 사람, 그 때문에 잠을 설치는 사람. 신의 허락으로 일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