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선과 꽃 / 밝은 하늘 2009/11/27(금) 찌는 여름날 생선가시 하나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고 하루 지나면 어느 새 구더기들 드글거린다 구더기도 혹시 생명인가? 뼈만 앙상한 생선의 몸에서 흰 액체가 쏟아지고 그 안에서 알들이 깨어나 어느 새 구더기가 生命은 無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발화의 조건..
생각나 / 밝은 하늘 2009/11/17(금) 너를 떠올리면 덩치 큰 300년 된 이파리 무성한 느티나무가 생각나 너를 떠올리면 태백산 길 오를 때 마주치던 길섶의 눈색 바탕의 한 겨울 날씬한 주목이 생각나 너를 떠올리면 열다섯에 봉쇄수도원에 입회하여 꽃다운 나이 스물넷에 하느님 품에 안긴 리지외의 聖女 ..
소주가 쓴 날 / 밝은 하늘 2009/11/27(금) 아, 오늘은 하얀 소주가 쓰구나! 네가 보낸 문자 메시지는 쓰지 않은데 지금쯤 반달이 초가지붕 위에다 알을 낳고 있겠지 신종플루 걸렸다가 하루 만에 무사히 극복하고 自祝(자축)하는 이 밤 고상함은 온갖 유치찬란함 다 겪은 후 벗겨진 허물일 뿐
헛구역질 / 밝은하늘 2009/11/27(금) 위내시경 검사하러 모로 누웠더니 몸은 자꾸 긴장이 되고 속으로 화살을 쏘았다 그랬더니 긴장이 풀어졌는데 의사가 와서 기계를 입 속으로 넣기 시작했는데 헛구역질이 자꾸 나오는 바람에 답답한 의사 양반 왈, 답답한 간호사 양반 왈, -좀만 참으세요! -이런 젠장! -..
너와 함께 외치고 싶어 / 밝은 하늘 2009/11/24(화) 너를 갖고 싶어 어떻게 해야 너를 가질 수 있는지 혹시 네가 알면 좀 가르쳐줄 수 있겠어 너의 외모보다 너의 재능보다 너의 지식보다 너의 배경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너의 마음이었어 마음이 뭐 중요하냐고들 사람들이 말한다지만 나는 이래봬도 佛者..
너의 진실 / 밝은 하늘 2009/11/24(화)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와 함께 했던 과거의 추억을 한 움큼 모아다 태웠는데 그 추억은 재가 되어 사라질 줄 알았는데 곧바로 연무로 변하더니 너의 머리 위로 날아와 새가 되었다 너의 따스한 손과 환한 미소와 진실한 걸음걸이는 너의 가슴 속 깊이 숨겨놓은 너의 ..
신종플루 / 밝은 하늘 2009/11/24(화)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뽑아든 만년필 잉크가 와이셔츠에 튀어 무지개 생겨나고 저 멀리 던진 물수제비 돌아와 펄펄 끓는 난로 위 주전자 속에서 화염을 방사하고 신종플루에 걸린 가련한 인생이 뱉어내는 욕설의 썩은 내는 가시나의 볼을 어루만지고 머그잔 속..
얼굴 묻을 가슴 / 밝은 하늘 2009/11/24(화) 바람아, 이제 그만 좀 불어라! 뭐 더 떨굴 낙엽이라도 있느냐 늦은 저녁 먹고 느긋한 산책길 나서는데 가로등 위로 얼굴 빼곰히 내민 가시나 네 생각에 가던 길 멈추고 멍청히 전봇대 옆에 서서 그림자 되었네 내가 사람이 아니고 아마 사물이었다면 가령 별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