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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10. 16. 10:53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시인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트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많이 싸운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도종환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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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 이성선 시인(1941-2001)현대시/한국시 2023. 10. 16. 10:50
아래는 라디오 Happy FM의 中 "느낌 한 스푼"에서 오늘 소개된 詩이다. 언터넷에서 전문을 확인하여 타자해본다. 가을 편지 – 이성선 시인(1941-2001)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어가고 있습니다. 그 빈 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 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 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 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 달라 나무에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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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목 - 복효근 시인(1962-)현대시/한국시 2023. 10. 9. 18:34
탁목 - 복효근 시인(1962-) 죄 많은 짐승이었을 것이다 닥따그르 딱따그르-- 새는 나무에 머리를 짓찧으며 울어야 했을 것이다 벌레나 잡아먹으며 연명해야 하는 생 고달프기도 했겠으나 숲에는 또 그와 같이 구멍 뚫린 나무토막 제 머리를 때리듯 자꾸만 때리며 딱 딱 딱 딱 딱따그르 딱따그르------- 벌레 같은 번뇌를 죽여 삼ㄱ키며 살아가는 생도 있다 깊은 숲에 들지도 못하고 저무는 숲길 언저리에서 딱따그르 딱 딱 딱따그르르---------- 그 소리에나 부딪쳐 가슴에 허공을 내며 이렇게 벌레처럼 아픈 생도 있다 복효근 시집 실천문학사, 2013년, 중에서 탁목: 딱따구릿과에 속한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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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 복효근 시인(1962-)현대시/한국시 2023. 10. 7. 23:47
늦가을 - 복효근 시인(1962-) 술 덜 깬 아침 한나절 약속 어긴 것 화 안 내고 혼자서 지리산 둘레길 산행 나가는 낡은 아내 미웁지 않다 혼자 돌아가는 음악 무슨 뜻인지 몰라 소프라노 낯선 나라 말 그냥 악기 소리처럼 싫지 않다 너무 많은 나에게 내가 지쳐서 전화 한 통 없는 이 쓸쓸함이 좀 오래갔으면 좋겠다 마당귀엔 산에서 옮겨 심은 용담 꽃잎 벌리는 의뭉스런 햇살 손길 내 몸이 간지럽다 벌 한 마리 꽃우물에 빠져 맴돌고 가만가만 진저리 쳐대는 꽃 저들의 한바탕 음화 같은 풍경에 때 아닌 내 거시기가 선다 무리에서 처져서 산다는 부끄럼 말고도 처진 자만이 아는 권태로운 즐거움도 있어 아주 먼, 여자를 떠올리며 수음을 했다 이 좀스러운 외도가 그리 죄스럽지 않은 마흔아홉 늦은 가을 복효근 시집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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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의 못을 뽑고 - 복효근 시인(1962-)현대시/한국시 2023. 10. 7. 11:08
타이어의 못을 뽑고 - 복효근 시인(1962-) 사랑했노라고 그땐 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너를 찾아 고백하고도 싶었다 -- 그것은 너나 나의 가슴에서 못을 뽑아버리고자 하는 일 그러나 타이어에 박힌 못을 함부로 잡아 뽑아버리고서 알았다 빼는 그 순간 피식피식 바람이 새어 나가 차는 주저앉고 만다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 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둔 채 정비소로 가든지 폐차장으로 가든지 갈 데까지는 가는 것 갈 때까지는 가야 하는 것 치유를 꿈꾸지 않는 것 꿈꾼대도 결국 치유되지 않을 것이므로 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는 것 때론 대못이 대못 같은 것이 생이 새어 나가지 않게 그러쥐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복효근 시집 (주)실천문학, 2013,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