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한국현대시) 바닥을 친다는 것에 대하여 / 주용일 시인 (1964-2015)

밝은하늘孤舟獨釣 2009. 4. 1. 22:23

바닥을 친다는 것에 대하여 / 주용일 (1964-2015)

<꽃과 함께 식사>에서


모든 수직이 수평으로 눕는

바닥은 세상에 널려 있지만

진정으로 바닥을 칠 줄 아는 이는 드물다

바닥을 슬픔으로 칠 때 통곡은 통곡다워지고

웃음은 뛸 듯한 기쁨이 되기도 한다

길바닥이나 지하도 바닥 같은

생의 밑바닥 깔고 앉아 뭉그적거려 본 뒤에야

바닥을 치는 일 무언지도 알게 된다

바닥 치고 일어서면

거기서부터 다시 길인 것도 알게 된다

물에 빠져 익사직전 캄캄한 숨막힘의 순간,

발바닥에 닿는 강바닥의 촉감에는

바닥을 친다는 것이

바닥을 차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솟구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버려지거나 버림 받은 것들이

마지막으로 이르는 곳이 바닥이지만

바닥이 없다면 호수는 하늘을 담지 못하고

우물은 목마른 이의 갈증 풀어주지 못한다

바닥은 낮고 평평해서 누구나 주저앉고 싶어

바닥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아니다, 결코 머무는 곳 아니다

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바닥으로 바닥을 탁 차고

다시 길 떠나는 곳이 바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