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한국현대시) 여덟 번째 고백성사 / 김여정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09. 4. 2. 21:55

여덟 번째 고백성사 / 김여정

<시와 십자가>에서

 


천주여,

그날 저녁 무렵엔

당신의 등 뒤에서

비가 참 많이도 내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서 계시던

다리 아래 강물도

그 강물 속 하늘도

그 하늘의 당신 머리칼도

온통 비에 젖어 흐르고 있었습니다.


천주여,

당신은 다 알고 계셨지요.

당신의 젖은 머리칼 한 올에도 매달리지 못하고

캄캄한 절망이 되어 떠내려가는

내 꿈의 난파難破를


가슴에 화인火印된 십자가에서

줄줄이 피 흐르는

당신의 등 뒤에서

비는 또 그렇게도 아프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천주여, 

당신은 참으로 다 알고 계셨지요.

한평생 닦고 닦아 빛나던

말씀에 먹칠을 하는

죽은 기도까지

죽은 기도의 곤두박질까지

곤두박질의 허무까지

그 허무의 불멸不滅까지

당신은 다 헤아리고 계셨지요.


끝내 당신의 적막은 적시지 못한

비에,

젖을 대로 젖은

영혼의 누더기 하나 걸치고

돌아와

힘없이 목고개 꺾는

나에게

당신은 젖은 머리칼로

내 상처의 물기를 씻어내며

“네 절망의 강물

그 짙은 회색빛 안개를

내가 마셨다”하셨지요.

오, 내 안의 외로운

천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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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 주면 성주간이니 내일은 시간을 내어 고백성사를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