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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십자가 / 정호승 시인 (1950-)현대시/한국시 2009. 4. 8. 10:15
밤의 십자가 / 정호승 (1950- )
밤의 사울 하늘에 빛나는
붉은 십자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십자가마다 노숙자 한 사람씩 못 박혀
고개를 떨구고 있다
어떤 이는 아직 죽지 않고 온몸을 새처럼
푸르르 떨고 있고
어떤 이는 지금 막 손과 발에 못질을 끝내고
축 늘어져 있고
또 어떤 이는 옆구리에서 흐른 피가
한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비바람도 천둥도 치지 않는다
밤하늘엔 별들만 총총하다
시민들은 가족의 그림자들까지 한 집에 모여
도란도란 밥을 먹거나
비디오를 보거나 발기가 되거나
술에 취해 잠이 들 뿐
아무도 서울의 밤하늘에 노숙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줄을 모른다
먼동이 트고
하나 둘 십자가의 불이 꺼지고
샛별도 빛을 잃자
누구인가 검은 구름을 뚫고
고요히 새벽 하늘 너머로
십자가에 매달린 노숙자들을
한 명씩 차례차례로 포근히
엄마처럼 안아 내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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