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움직이는 십자가 / 임지현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09. 4. 7. 09:51

움직이는 십자가 / 임지현


깊이 패인 주름살

십자가를 그었다.


거슬러가는 시간 앞에

무릎 꿇고

팽팽한 이미 위에

잔금을 새기면서


새롭게 일어서는 아침 햇살 앞에

살땀을 흘리면서

허리 굽힌 삽질

흥건한 고단함을

구들장에 눕힌 날들


흠 없이 가는 시간 붙잡지 못했다.


일월이 지는 밤을

수없이 접어서

새날을 해 위에 또 띄우면서

이만큼 빛 바래어져 큰 주름 일구었다.


열십자 끌고 가는 길목마다 하얀 억새꽃 산그늘 지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