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한국 현대시) 분갈이 / 전영관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17. 8. 22. 18:25

아래의 시는 최근에 우연히 심리기획자 이명수 선생의 세바시 강의 <내 마음이 지옥일 때>에서 소개된 시이다. 시를 검색하였더니 문화저녈21에 실린 서대선 시인의 해설이 달린 글이 나왔다. 서 시인의 글도 참 내용이 좋아 아래에 소개한다.

아래 글의 출처: http://www.mhj21.com/sub_read.html?uid=100747§ion=sc128§ion2=%BE%C6%C4%A7%C0%C7%20%E3%CC

 

분갈이 / 전영관 시인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내가 당신을 만진다면

흙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놀라지 않겠지

느리지만

한 번 움켜쥐면

죽어도 놓지 않는 사랑

 

 

# 사이좋은 부부는 서로 닮아 보인다. 연리지(蓮理枝)처럼 수종이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상생하며 한 세상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연리지가 된 나무도 사시사철 서로 바라보고 좋기만 했던 건 아니리라. 봄이 와서 연초록 이파리가 돋아나면 온갖 벌레들이 갉아먹는 걸 견디어야 했고, 날아든 새들의 쉼터가 되어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키울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했을 것이다. 서로 다른 꽃을 피워 올린 채 각양각색의 곤충들과 새들에게 먹이공양을 해주어도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으며, 세상의 순리와 이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했으리라. 가을이 오면 떨켜를 만들어 겨울을 준비할 때, 땅 속 깊숙이 서로 잡고 있던 손을 토닥거려 주었을 것이리라.


부부도 연리지처럼 살아가려면 마음의 분갈이가 필요하다. 부부사이도 타성에 빠지게 되면 오랫동안 분갈이를 하지 않은 화분과 같아진다. 부부간의 건강한 의사소통에 문이 닫히고 자신의 기준으로만 바라보게 되면, 감정의 물이 고인 채 흘러나가지 않아 뿌리가 썩게 되어 결국은 가족의 건전한 생장을 방해 하거나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부부의 보금자리가 아무리 호화롭고 고가의 것으로 치장되었다하여도 부부의 사랑과 상생의 도움이 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쇼윈도부부 같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서로가 상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내가 당신을 만진다면/흙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놀라지 않았을 텐데, 사랑을 이용했거나, 집착했거나, 방관했거나, 무시하고 버려두지 않았는지 분갈이하며 살펴볼 일이다.


마음의 분갈이를 할 때는 부부가 서로 마주앉아 자신의 화분 상태를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 화분에서 들어낸 마음의 뿌리에 썩은 것이 있다면 과감히 잘라내고, 한쪽으로만 지나치게 웃자란 마음의 가지도 쳐버리고, 시들어 있거나 병든 이파리도 제거해주어야 한다. 뿌리를 감싸고 있던 흙 중에서 꼭 필요하다면 적절히 합의한 수준에서 오래된 흙이라도 뿌리 중심에 남겨두고 새로운 흙과 부엽토를 섞어 두 사람 마음의 크기에 적절한 화분에 옮겨 담아 뿌리가 안심하고 새로운 흙을 그러안고 더욱 힘차게 벋어나갈 수 있도록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두어야 한다. “느리지만/한 번 움켜쥐면/죽어도 놓지 않는 사랑으로 연리지가 되어 한세상 건너려면, 마음의 분갈이가 필요한지 주기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이상은 2016/09/27자 문화저널21에 실렸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