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한국 현대시) 괴물 / 최영미 시인(1961-)

밝은하늘孤舟獨釣 2018. 2. 6. 17:13

아래의 시는 문단내 성적 학대를 폭로한 최영미 시인의 '미투'詩이다.

아래의 시에 등장하는 시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는데

그 시인에 대해 크게 실망을 하게 되었다.


다시 첨부하자면, 위에 적은 것은 나의 실수다.

시를 가지고, 시의 내용을 가지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려고 했고,

그것이 사실인양 잠시나마 여겼기 때문이다.

명심할 것은 시는 내가 이해한 바로는, 팩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팩트에 관한 주관적인 체험의 느낌이나 생각을 

시청각적 장치와 언어적 장치를 통해 예술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따라서 아래의 글에 나오는 내용은 사실일지 모른다는 개연성은 있을지언정 사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쉽게 속단할 것이 못된다. 그런데 오늘 밤 jtbc에서 손석희 아나운서와 최영미 시인의 인터뷰를 보니

과연 그럴 개연성은 높다.



괴물 / 최영미 시인(1961-)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 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이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선생도

En의 몸집이 켜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2017 12월호 계간 문화지 <황해문화>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