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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멧새 소리>
    사람되기/인문학 2021. 10. 31. 22:25

     

    짝새가 발부리에서 날은 논두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워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늪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가웠다

     

    돌다리에 앉아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

     

    昌原道

    ---南行詩抄 1

     

    솔포기에 숨었다

    토끼나 꿩을 놀래주고 싶은 산허리의 길은

     

    엎대서 따스하니 손 녹이고 싶은 길이다

     

    개 데리고 호이호이 휘파람 불며

    시름 놓고 가고 싶은 길이다

     

    괴나리봇짐 벗고 땃불 놓고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은 길이다

     

    승냥이 줄레줄레 달고 가며

    덕신덕신 이야기하고 싶은 길이다

     

    더꺼머리총각은 정든 님 업고 오고 싶은 길이다

     

    __________________

     

    固城街道(고성가도)

    ---南行詩抄 3

     

    固城장 가는 길

    해는 둥둥 높고

     

    개 하나 얼씬하지 않는 마을은

    해밝은 마당귀에 맷방석 하나

    빨갛고 노랗고

    눈이 시울은 곱기도 한 건반밥

    아 진달래 개나리 한참 피었구나

     

    가까이 잔치가 있어서

    곱디고운 건반밥을 말리우는 마을은

    얼마나 즐거운 마을인가

     

    어쩌닞 당홍치마 노란저고리 입은 새악시들이

    웃고 살 것만 같은 마을이다

     

    *건반밥=건반(乾飯): 국이 없이 반찬만으로 먹는 . 

     

    _________

     

    바다

     

    바닷가에 왔더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증지증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여

    어쩐지 쓸쓸한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____________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___________

     

    고향

     

    나는 北關에 혼자 앓아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如來 같은 상을 하고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쓰낟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을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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