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되기/인문학

천상병 시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밝은하늘孤舟獨釣 2021. 11. 30. 08:41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것도 막걸리로만

아주 적게 마신다.

 

술에 취하는 것은 죄다.

죄를 짓다니 안 될 말이다.

취하면 동서사방을 모른다.

 

술은 예수 그리스도님도 만드셨다.

조금씩 마신다는 건

죄가 아니다.

 

인생은 苦海다.

그 괴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술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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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밫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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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오늘만의 밤은 없었어도

달은 떴고

별은 반짝였다.

 

괴로움만의 날은 없어도

해는 다시 떠오르고

아침은 열렸다.

 

무심만이 내가 아니라도

탁자 위 컵에 꽂힌

한 송이 국화꽃으로

나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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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1

 

아름다워라, 젊은날 사랑의 대꾸는

어딜 가?

어딜 가긴 어딜 가요?

 

아름다워라, 젊은날 사랑의 대꾸는

널 사랑해!

그래도 난 죽어도 싫어요!

 

눈 오는 날 사랑은 쌓인다.

비 오는 날 세월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