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詩) 어머니의 배추 - 정일근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2. 12. 14. 09:09

어머니의 배추 - 정일근 시인

 

어머니에게 겨울 배추는 詩다

어린 모종에서 시작해

한 포기 배추가 완성될 때까지

손 쉬지 않는 저 끝없는 퇴고

 

노란 속 꽉 찬 배추를 완성하기 위해

손등이 갈라지는 노역의 시간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배추는

이 겨울 빛나는 어머니의 詩가 되었다

 

나는 한 편의 詩를 위해

등 굽도록 헌신한 적 없어 어머니

온몸으로 쓰신

저 푸르싱싱한 詩 앞에서 진초록 물이 든다

 

사람의 詩는 사람이 읽지 않은 지 오래지만

자연의 詩는 자연의 친구가 읽고 간다

새벽이면 여치가 제일 먼저 달려와 읽고

사마귀가 뒤따라 와서 읽는다

 

그 소식을덛고 종일 기어온

민달팽이도 읽고 읽으면서

배부른 어머니의 詩 시집 속에

납작해져 죽어버린 내 詩가 아니라

살아서 배추벌레와 함께 사는

살아서 숨쉬는 詩 어머니의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