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나에게 – 김남조 시인 (1927-2023)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2. 16. 11:08

나에게 김남조 시인 (1927-2023)

 

1

가려거든 가자

의 칼날을 딛고

만년설 뒤덮인 정상까지 가자

거기서

너와 나

결투를 하자

 

2

사생결단 그쯤을

훨씬 넘어서서

영혼의 等價

사람의 진실 겨루어보자

참말로 죽기 아니면

사랑하겠느냐

참말로 죽기 그 아니면

살아내겠느냐

 

가려거든 가자

화약가루 자욱한

땡볕에라도 나서자

 

2

너의 권리는 끝났다

시험장의 학생이

두 번 답안지를 낼 수 없듯이

너도 한 번뿐인 기회를

써버린 게야

평점에 이르기를

한 남자를 행복하게 못했으며

余他

이에 준한다는구나

 

이제부턴

후회와 둘이 살면서

스스로 판결한

벌을 섬길지니

즉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손 내밀지 마라

 

- 미래사에서 1991년 출판한 김남조 시집 <가난한 이름에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