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하루만의 위안(慰安) - 조병화 시인(1921-2003)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3. 16. 13:57

아래의 시는 3월 14일 목요일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하루만의 위안(慰安) - 조병화 시인(1921-2003)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 조병화 시인의 제2<하루만의 위안>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