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 신경림 시인(1935-)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3. 18. 22:01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 신경림 시인(1935-)

 

아무도 우리는 너희 맑고 밝은 영혼들이

춥고 어두운 물속에 갇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밤마다 별들이 우릴 찾아와 속삭이지 않느냐

몰랐더냐고 진실로 몰랐더냐고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이토록 허술했다는 걸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이토록 바르지 못했다는 걸

우리가 꿈꾸어 온 세상이 이토록 거짓으로 차 있었다는 걸

밤마다 바람이 창문을 찾아와 말하지 않더냐

슬퍼만 하지 말라고

눈물과 통곡도 힘이 되게 하라고

올해도 사월은 다시 오고

아름다운 너희 눈물로 꽃이 핀다

너희 재잘거림을 흉내 내어 새들도 지저귄다

아무도 우리는 너희가 우리 곁을 떠나

아무 먼 나라로 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바로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뜨거운 열망으로 비는 것을 어찌 모르랴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보다 알차게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을 보다 바르게

우리가 꿈꾸어 갈 세상을 보다 참되게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아름다운 영혼들아

별처럼 우리를 이끌어줄 참된 친구들아

추위와 통곡을 이겨내고 다시 꽃이 피게 한

진정으로 이 땅의 큰 사랑아

 

- 사람이야기가 2017년 펴내고 이경자가 쓴 <시인 신경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