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밖에 더 많다 – 이문재 시인(1959-)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5. 31. 11:56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밖에 더 많다 이문재 시인(1959-)

 

내 안에도 많지만

바깥에도 많다

 

현금보다 카드가 더 많은 지갑도 나다

삼년 전 포스터가 들어 있는 가죽 가방도 나다

이사할 때 테이프로 봉해둔 책상 맨 아래 서랍

패스트푸드가 썩고 있는 냉장고 속도 다 나다

바깥에 내가 더 많다

 

내가 먹는 것은 벌써부터 나였다

내가 믿어온 것도 나였고

내가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했던 것도 나였다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안데스 소금호수

바이칼 마른 풀로 된 섬

샹그리라를 에돌아 가는 차마고도도 나다

먼 곳에 내가 더 많다

 

그때 힘이 없어

용서를 빌지 못한 그 사람도 아직 나였다

그때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한 그 사람도 여전히 나였다

돌에 새기지 못해 잊어버린

그 많은 은혜도 다 나였다

 

아직도

내가 낯설어 하는 내가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