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1950-)

밝은하늘孤舟獨釣 2009. 7. 25. 12:14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1950-)

-시집 <포옹> (창비) 중에서-



나뭇가지가 바람에 뚝뚝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거리에 유난히 작고 가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나뒹구는 것은


새들로 하여금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작고 가늘게 부러지지 않고

마냥 크고 굵게만 부러진다면

어찌 어린 새들이 부리로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하늘 높이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인간의 집을 짓는 데 쓸 수 있겠는가

 

나의 느낌:

우연히 어디선가 이 시를 봤는데 마치 길거리에서 이쁜 처자 보면 눈길 한 번 더 가듯 내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시가 이 시다. 부러진다는 것은 적어도 중년기에 들어서 한참 방황을 했던 나한테는 내려간다는 것 혹은 바닥을 친다는 것과 사도신경에 나오는 저승에 간다는 것과 이음동의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