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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1901-1989)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
그는 / 정호승 (1950-)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중에서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
귀천 / 천상병 (1930-1993)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가 / 도종환 (1954-)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
군말 / 한용운 (1879-1944) <님의 침묵>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衆生이 釋迦의 님이라면 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伊太利이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戀愛가 自由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
공양 / 안도현 (1961-) 싸리꽃을 애무하는 山(산)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골목길 / 목필균 종암동과 돈암동 사이에 제법 큰 골목이 있다 대형 마트에 밀려 궁색해진 현주네 슈퍼 수입 쇠고기 홍수 속에서 횡성 한우만 고집하는 수준 정육점 기성복 시대에 목숨만 붙어 있는 맞춤 양복점 명절 때나 복닥거리는 경기 방앗간 비타민 어린이집 동현교회 종암 세탁소 은주 옷 수선..
고로쇠나무 / 정호승 (1950-)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중에서 나는 너희들의 어머니니 내 가슴을 뜯어가 떡을 해먹고 배불러라 나는 너희들의 아버지니 내 피를 받아가 술을 해먹고 취해 잠들어라 나무는 뿌리만큼 자라고 사람은 눈물만큼 자라나니 나는 꽃으로 살기보다 꽃을 키우는 뿌리로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