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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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 도종환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11. 4. 23:07
여백 – 도종환 시인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늬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도종환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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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이름으로 – 천양희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11. 1. 10:59
아래의 시는 천양희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좋아서 옮겨본다. 바람의 이름으로 – 천양희 시인 땅에 낡은 잎 뿌리며 익숙한 슬픔과 낯선 희망을 쓸어버리는 바람처럼 살았다 그것으로 잘 살았다, 말할 뻔했다 허공을 향해 문을 열어놓는 바람에도 너는 내 전율이다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그것으로 잘 걸었다, 말할 뻔했다 바람 소리 잘 들으려고 눈을 감았다 그것으로 잘 들었다, 말할 뻔했다 바람은 나무 밑에서 불고 가지 위에서도 분다 그것으로 바람을 천하의 잡놈이라, 말할 뻔했다 천양희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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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에 빗자루 기대며―신현정 시인(1948∼2009)현대시/한국시 2023. 11. 1. 10:56
아래는 오늘 아침 중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느낌이 좋아서 인테넷에서 검색하여 전문을 확인하였다. 담에 빗자루 기대며―신현정(1948∼2009) 이 빗자루 손에 잡아보는 거 얼마만이냐 여기 땅집으로 이사와 마당을 쓸고 또 쓸고 한다 얼마만이냐 땅에 숨은 분홍 쓸어보는 거 얼마만이냐 마당에 물 한 대야 확 뿌려보는 거 얼마만이냐 땅 놀래켜보는 거 얼마만이냐 어제 쓸은 마당, 오늘 또 쓸고 한다 새벽같이 나와 쓸 거 없는데 쓸고 또 쓸고 한다 마당 쓸고 나서 빗자루를 담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놓는다 빗자루야 그래라 네가 오늘부터 우리집 도깨비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