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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 정호승 (1950-)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얼마나 착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깨끗하게 살았으면 죽어서도 그대로 피어 있는가 장미는 시들 때 고개를 꺾고 사람은 죽을 때 입을 벌리는데 너는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똑같구나 세상의 어머니들 돌아가시면 저 모습으로 우리 헤어져도 저 모..
봄비 / 변영로 (1898-1961)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기쁜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어렴풋이 나..
봄이 오면/ 김동환 (1901-1958)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봄이 오면 하늘 위에 종달새 우네 종달새 우는 곳에 내 마음도 울어 나물 캐는 아가씨야 저 소리 듣거든 새만 말고 이 소리도 함께 들..
진달래꽃 / 김소월 (1902-1934)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1) Original Text 꽃 / 김춘수 (1922-2004)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부활절의 기도 / 이해인 (1945-) 1986.4. <생활성서> 그리고 <시간의 얼굴> 당신께 받은 사랑을 사랑으로 돌려 드리지 못한' 저의 어리석음조차 사랑으로 덮어 주신 당신 앞에 한 생애를 굽이쳐 흐르는 눈물의 강은 당신께 드리는 저의 기도입니다 깊고 적막한 마음의 동굴 속에 수없이 얼어붙은 절..
축하합니다 / 정호승 (1950-)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중에서 이 봄날에 꽃으로 피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이 겨울날에 눈으로 내리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괜찮아요, 손 드세요, 손 들어보세요 아, 네, 꽃으로 피어나지 못하신 분 손 드셨군요 바위에 씨 뿌리다가 지치신 분 ..
육탁(肉鐸) / 배한봉 (1962-) 〈시와 반시〉 2005년 여름호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 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