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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나리소 -도종환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9. 4. 16:41
나리소 – 도종환 시인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가장 고요해지는 사랑이 깊은 사랑이다 나릿재 밑에 나리소 못이 가장 깊고 고요하듯 요란하고 진부한 수식이 많은 사랑은 얕은 여울을 건너고 있는 사랑이다 사랑도 흐르다 깊은 곳을 만나야 한다 여울을 건너올 때 강물을 현란하게 장식하던 햇살도 나리소 앞에서는 그 반짝거림을 거두고 조용해지듯 한 사람을 사랑하는 동안 마음이 가장 깊고 착해지지 않으면 진짜 사랑이 아니다 물빛처럼 맑고 투명하고 선해지지 않으면 도종환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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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눈 덮인 새벽 - 도종환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9. 4. 12:43
눈 덮인 새벽 - 도종환 시인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놓고 새벽은 산허리로 물러나 앉은 채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헐벗은 나뭇가지도 텅 빈 들판도 감히 손대기 어려운 고운 풍경으로 바꾸어놓고 고요히 호흡을 가다듬는 초겨울 새벽에는 나도 조건 없이 남을 덮어주고 싶습니다 용서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 눈 덮인 들판처럼 넓고 깨끗해져 그러는 건 아니고 지난날 용서받고 싶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틀거리며 걸어온 발자국을 함박눈이 밤새 덮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끄럽게 돌아선 골목길 있어야 할 어려운 자리를 지키지 않고 내내 마음 무겁던 나날들과 지키지 못한 언약들도 눈처럼 다 덮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도종환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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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공자(孔子)의 생활난(生活難) - 김수영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9. 2. 23:00
공자(孔子)의 생활난(生活難) - 김수영 시인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發散)한 형상(形象)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作戰)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 이태리어(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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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홍범도 장군의 절규 - 이동순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9. 1. 23:28
뉴스를 보다가 이 시를 접하고 이곳에 옯겨보았다. 진짜 이런 bullshit같은 일은 없어야 하는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묵인해놓고, 말로는 부인도 찬성도 안 했다고, 말장난하는 영혼이 없는 싼티나는 인간들, 홍 장군의 가벼운 흠을 잡아 욕보이는 인간들, 그리고 제 역할 확실히 한 군인을, 최고 존엄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어거지로 죄명을 목에 달아 입막음 하고 처벌하려는 머저리 저능아 인간들을, 귀신들아, 제발 이런 인간들 좀 잡아가다오. 홍범도 장군의 절규 - 이동순 시인 그토록 오매불망 나 돌아가리라 했건만 막상 와본 한국은 내가 그리던 조국이 아니었네 그래도 마음 붙이고 내 고향 땅이라 여겼건만 날마다 나를 비웃고 욕하는 곳 이곳은 아닐세 전혀 아닐세 왜 나를 친일매국노 밑에 묻었는가 그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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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아무도 없는 별 - 도종환 시인(1954-)현대시/한국시 2023. 9. 1. 10:17
벌써 선선해진 9월의 첫날이다. 완연한 가을의 쓸쓸한 분위기를 얼마전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별 – 도종환 시인(1954-) 아무도 없는 별에선 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 달맞이꽃이 피지 않는 별에선 해바라기도 함께 피어나지 않고 폭풍우와 해일이 없는 곳에선 등 푸른 물고기도 그대의 애인도 살 수 없다 때로는 화산이 터져 불줄기가 온 땅을 휩쓸고 지나고 그대를 미워하는 마음 산을 덮어도 미움과 사랑과 용서의 긴 밤이 없는 곳에선 반딧불이 한 마리도 살 수 없다 때로는 빗줄기가 마을을 다 덮고도 남았는데 어느 날은 물 한 방울 만날 수 없어 목마름으로 쓰러져도 그 물로 인해 우리가 사는 것이다 강물이 흐르지 않는 별에선 그대도 나도 살 수 없다 낙엽이 지고 산불에 산맥의 허리가 다 타들어가도 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