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바람의 말 – 마종기 시인(1939-)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3. 30. 13:12

아래의 시는 어제 클래식 에프엠 라디오의 어느 프로그램에서 언급된 시이다. 따로 메모지에 기록해 두지 않아서, 프로그램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람의 말 마종기 시인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