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배추 - 정일근 시인 어머니에게 겨울 배추는 詩다 어린 모종에서 시작해 한 포기 배추가 완성될 때까지 손 쉬지 않는 저 끝없는 퇴고 노란 속 꽉 찬 배추를 완성하기 위해 손등이 갈라지는 노역의 시간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배추는 이 겨울 빛나는 어머니의 詩가 되었다 나는 한 편의 詩를 위해 등 굽도록 헌신한 적 없어 어머니 온몸으로 쓰신 저 푸르싱싱한 詩 앞에서 진초록 물이 든다 사람의 詩는 사람이 읽지 않은 지 오래지만 자연의 詩는 자연의 친구가 읽고 간다 새벽이면 여치가 제일 먼저 달려와 읽고 사마귀가 뒤따라 와서 읽는다 그 소식을덛고 종일 기어온 민달팽이도 읽고 읽으면서 배부른 어머니의 詩 시집 속에 납작해져 죽어버린 내 詩가 아니라 살아서 배추벌레와 함께 사는 살아서 숨쉬는 詩 어머니의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