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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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 - 양애경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1. 26. 15:42
1 立冬 지난 후 해는 산 너머로 급히 진다. 서리조각의 비늘에 덮인 거리 어둠의 粒子가 추위로 빛나는 길목에서 나는 한 개비의 성냥을 긋고 오그린 손 속에 꽃잎을 급히 피워 낸다. 불의 의상을 입으며 事物은 하나하나 살아나기 시작하지만 불은 가장 완벽하게 피었다 지는 꽃 화사한 절망. 절벽으로 떨어지듯 꺼진다. 2 기침을 한다. 탄불을 갈며. 달빛 밑에 웅크리면 아궁이 옆으로 희미하게 흩어지는 그림자. 한밤중 여자들의 팔은 生活로 배추 속처럼 싱싱하게 차오르지만 좀처럼 불은 붙지 않는다. 食口들은 구들에 언 잔등을 붙인다. 어떻게 된 것일까 옛 집의 불씨는. 영원히 꽃피우는 전설의 나무와 같이 純金으로 제련된 불씨, 화로에 잘 갈무리되어 주인을 지켜주던. 3 이제 불은 때묻고 지쳤다. 누가 불을 去來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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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성탄전야 - 곽재구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1. 26. 15:12
성탄전야 - 곽재구 시인 소년이 눈보라속을 걷는다 숲속의 작은 통나무집 눈쌓인 밤은 푸르다 소년이 통나무 집안으로 들어선다 성냥을 그어 램프에 불을 붙인다 창틀 앞에 아주 작은 눈사람이 엎드려 있다 소년이 눈사람에게 다가가 꼬옥 안아 준다 사흘 내내 기다렸니 이런 아무것도 안 먹었구나 소년이 눈사람에게 한 스픈 물을 먹인다 눈사람의 몸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다 소년이 눈사람을 안아 식탁 위로 옮긴다 성냥을 그어 벽난로에 불을 붙인다 벽난로에서 밀감 빛 크리스마스 캐럴이 쏟아져 나온다 소년이 턱을 괴고 눈사람을 바라보는 동안 눈사람은 조금씩 녹아 고슴도치가 된다 고슴도치도 턱을 괴고 소년을 본다 이번에 도시로 간 일 잘 되었단다 이제 혼자 남겨두고 가지 않을 게 창 밖에 눈보라가 날리고 밤은 성마태수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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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어떤 성화(聖畫) - 이시영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1. 26. 14:49
링크: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1224022005 어떤 성화(聖畫) - 이시영 시인 아기 예수가 오셨다는 영하 17도의 성탄 전야, 우성아파트 가는 언덕길 초입에서 군고구마장수 부부가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화덕의 연통을 양쪽에서 꼭 끌어안은 채 칼바람을 맞고 있었는데, 나무뿌리처럼 강인하게 얽힌 그들의 두 팔을 지상의 그 누구도 다시는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어떤 성화(聖畫)/이시영 어떤 성화(聖畫)/이시영 아기 예수가 오셨다는 영하 17도의 성탄 전야, 우성아파트 가는 언덕길 초입에서 군고구마장수 부부가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화덕의 연통을 양쪽에서 꼭 끌어안은 채 칼 www.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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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 – 복거일 시인현대시/한국시 2022. 12. 28. 10:35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 – 복거일 시인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아직 담배 피우고 대보름엔 아이들이 마른 쇠똥을 불씨 삼아 논두렁을 태우던 시절 어느 두메산골에 가난한 내외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자잘한 걱정거리들을 잠 속으로 끌고 들어간 아내여,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고 우리 가슴은 얼굴 없는 두려움에 떨리지. 궁색한 살림의 냄새를 감추느라 늘 조심스러운 아낙, 내 지금 그대를 위해 무엇을 하리. 그저 그대 꿈속에 포근히 눈이 내리라 이렇게 이불깃을 여미는 것 말고는. 하여 눈이 내리기를, 감나무 가지들 무심히 늘어진 골목길에 거기 걸어가는 소녀 위에 아직 파릇한 꿈들이 일렁이는 그 가슴에 눈이 포근히 덮이기를. 지난날의 아린 기억들까지 이제 솜이불 같은 눈으로 내리기를. 그리고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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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자장가 – 이향아 시인현대시/한국시 2022. 12. 28. 10:34
자장가 – 이향아 시인 어미 냄새 치마폭에 몇 알 감싸서 잠드는 어린 것들 이마 위에 얹는다 세세한 훈풍, 둥지에 가득 일어 혼자 떠나는 꿈길에도 길 잃지 말아라 잠나라 건널목의 파수꾼이여, 겁 많은 하린, 말 않는 환이, 꾀없는 준이입니다 아롱이 다롱이 한 소쿠리 소란한 밤톨들입니다 어둡지 않게 하소서 어미들의 젖은 신을 벗겨 주시고 그 손금마다 몇 다발씩 능금꽃을 피우소서 마늘 냄새 탱자냄새 행구는 물냄새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는 치자꽃 냄새 내 엄마 행주치마 끄집어 내어 나도 어미 냄새 몇 알 감싸다 잠든 애들 머리카락 갈피마다 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