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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 어려운 일은 외짝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은 실존 때문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아직 밟지 않은 수많은 날들이 있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 세상은 내가 극복해야 할 또..
시선 (視線) - 마종기 ..
// 일본이여, 울지 마소서! - 정호승 일본이여, 울지 마소서 일본이여, 일어나소서 지진으로 무너진 땅에도 꽃은 피고 쓰나미로 쓰러진 해안에도 갈매기는 납니다 2011년 3월 11일 센다이 동쪽 바다 그 거대한 지진의 파도 무서운 속도로 해안을 삼키고 마을을 삼키고 자동차와 기차를 장난감처럼 삼..
널 만나고 부터 / 이생진 어두운 길을 등불 없이도 갈 것 같다 걸어 서도 바다를 건널 것 같다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 것 같다 널 만나고 부터는 가지고 싶던 것 다 가진 것 같다
마누라 음식 간 보기 / 임보 아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 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손갈 내밀며 간을 보라 한다 그러면 "음, 마침 맞구먼, 맛있네!" 이것이 요즈음 내가 터득한 정답이다. 물론, 때로는 좀 간간하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할 때가 없지 않지만... 만일 "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아내가 한 ..
작은 부엌 노래 / 문정희 부엌에서는 언제나 술 괴는 냄새가 나요. 한 여자의 젊음이 삭아가는 냄새 한 여자의 설움이 찌개를 끓이고 한 여자의 애모가 간을 맡추는 냄새 부엌에서는 언제나 바삭바삭 무언가 타는 소리가 나요. 세상이 열린 이래 똑같은 하늘 아래 선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큰방에서 ..
알몸 노래 / 문정희 추운 겨울날에도 식지 않고 잘 도는 내 피만큼 내가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내 살만큼 내가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내 뼈만큼 내가 곧고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그러면 이제 아름다운 어른으로 저 살아 있는 대지에다 겸허히 돌려드릴 텐데 돌려드리기 전 한번만 꿈에도 그리운 네 피..
유방 / 문정희(1947-)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지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패잔병처럼 두 팔을 들고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유방암 사진을 찍는다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겁 속에 꼭꼭 싸매 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