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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悲歌) - 신동춘 시인 (1931-) 아, 찬란한 저 태양이 숨져 버려 어두운 뒤에 불타는 황금빛 노을 멀리 사라진 뒤에 내 젊은 내 노래는 찾을 길 없는데 들에는 슬피우는 벌레소리 뿐이어라 별같이 빛나던 소망 아침이슬 되었도다.. 소감 몇 마디: 이 詩는 흔히 신동춘 詩, 김연준 曲으로 잘 알려진 歌曲..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정호승 그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나무가 되기를 더이상 봄이 오지 않아도 의자마다 싱싱한 뿌리가 돋아 땅속 깊이 실뿌리를 내리기를 실뿌리에 매달린 눈물들은 모두 작은 미소가 되어 복사꽃처럼 환하게 땅속을 밝히기를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앉아 ..
초혼 - 김소월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
새해 / 구상 내가 새로와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 내가 새로와져서 인사를 하면 이웃도 새로와진 얼굴을 하고 새로운 내가 되어 거리를 가면 거리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 지난날의 쓰라림과 괴로움은 오늘의 괴로움과 쓰라림이 아니요 내일도 기쁨과 슬픔이 수놓겠지만 그것은 생활의..
올해의 성탄 -김남조 크리스마스는 등불을 들고 성당에도 가지만 자욱한 안개를 헤쳐 서먹해진 제 영혼을 살피는 날이다 유서를 쓰고 거기에 서명을 하듯, 한 줄의 시를 마지막인 양 적어보는 날이다 어리석고 뜨거운 나여 만월 같은 연모라도 품는다면 배덕의 정사쯤 어이없이 저지르고 말 그리고 외..
아 이 한 경치 속에 / 오재동 흰 눈발이 치는 날 성근 고목 가지 위에 누가 서서 줄을 돌리는지 홍매(紅梅) 붉은 꽃잎들이 팔짝팔짝 줄을 넘는다. 아랫도리에서 윗도리로 줄을 넘는 꽃잎들 핏물보다 고운 빛깔로 저희들끼리 뺨 비비며 속삭인다. 윙윙 참벌떼 날듯 아픈 혈맥 공중에 뻗는 아 이 한 경치 ..
환상특급 / 박광옥 개 벌레를 잡아 눈썹에 붙이고 나는 우~쑥 우쑥 밤길을 가네 다 모였느냐? 호수 속에 빠져 꼼짝 못하는 별들에게 호령하는 등 뒤에서 초승달 입이 찢어지네 풀섶에 팔베개로 하늘을 보니 교차로에 이정표, 환상특급 순이가 찾는 소리도 잊고 잠들었었네 교차로에 이정표, 불도 꺼지..
맑은 날의 얼굴 / 마종기 그만한 고통도 경험해보지 않고 어떻게 하늘나라를 기웃거릴 수 있겠냐구? 그만한 절망도 경험해보지 않고, 누구에게 영원히 살게 해달라 청할 수 있겠냐구? 벼랑 끝에 서 있는 무섭고 외로운 시간 없이 어떻게 사랑의 진정을 알아낼 수 있겠냐구? 말이나 글로는 갈 수 없는 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