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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 김남조 神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보이지 않는 깊고 높은 것 그 확신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사람을 위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위하여 고독한 의지와 사랑 준령의 등반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먹이고 기르는 자연을 위하여 죽은 후에도 영원히 안아 주는 ..
책 읽으며 졸기 / 김기택 잠이 깨는 순간마다 얼핏 책상 앞에서 졸고 있는 내가 보였다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코고는 소리를 얼른 멈추고 있었다 소매로 입가의 침자국을 닦고 있었다 졸음을 쫓아내려고 머리를 흔들고 열심히 눈을 비비고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눈을..
시인학교(詩人學校) / 김종삼 공고 오늘 강사진(講師陣)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 부문 폴 세잔느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김관식(金冠植),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지참(持參)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내에 쌓인 두터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金素月) 김수영(金洙暎) 휴학계(休學..
木草 / 김용범 木草들이 향기롭게 나부꼈다. 물가엔 은회색 털을 지닌 바리새인의 노새가 물을 먹고 있었다. 고전주의 음악처럼 빈 들판이 열려 있다. 시청역에서 보았던 시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같은 착각을 느꼈다. 읽을 때 느낌이 참 좋았다.
새치에 대하여 / 이수지 등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소리 숲 속에서 여러 번 길을 놓치네 붙잡히지 않으려 내쳐 달리는 사이 신발도 몇 짝 잃어버리네 우짖던 새들 모두 날아가고 나뭇가지 무수히 부러져도 숲은 끝나지 않네 어느새 발걸음만큼 무거워진 심장, 나를 쫓아오는 것은 맹렬하네. 이제 그만..
고랭지 채소를 심는 여인 / 권정남 흙보다 돌이 많은 산비탈 고랭지 배추모종을 옮기는 여인들 발을 헛디디면 지구에서 이탈될 듯 병풍 같은 밭에 바짝 매달려 있다 어린 배추잎이 나비 떼 되어 팔랑거리는 밭머리 장화만 무리지어 조용히 움직인다 구름 잡아 챙이 넓은 모자 만들어 쓰고 낮달 거머쥐..
뒷모습 / 나태주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 오로지 타인에게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물소리에게도 뒷모습이 있을까? 시드는 노루발풀꽃, 솔바람 소리, 찌르레기 울음소리에게도 뒷..
흔들리며 갈 때 자리가 잡힌다 / 이경구 지하철 의자 자리 하나 비었다 빈자리 양 옆으로 남자 둘이 앉아 있다 한 남자는 다리를 벌리고 자고 또 한 남자는 아시아계 검은 피부의 남자다 나이 지긋한 50대 아주머니 한 분 앉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밀고 들어가 앉는다 그러다 말고 다시 주춤, 그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