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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 김상미 모든 꽃은 피어날 땐 신을 닮고 지려할 땐 인간을 닮는다 그 때문에 꽃이 필 땐 황홀하고 꽃이 질 땐 눈물이 난다
저곳 / 박형준 空中이란 말 참 좋지요 중심이 비어서 새들이 꽉 찬 저 곳 그대와 그 안에서 방을 들이고 아이를 낳고 냄새를 피웠으면 空中이라는 말 뱃속이 비어서 하늘 끝까지 날아가는 새떼 -을지로 입구역에서 주은 시- -방명록에 저장해둔 것을 이곳에 옮겨본다.
나이 / 이븐하즘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네 희끗희끗한 귀밑머리와 이마에 팬 내 주름살을 보고는 나이가 몇이나 되냐고 그럴 때 난 이렇게 대답하지 내 나이는 한 시간이라고 여태까지 살아온 세월을 헤아리고 그 모든 걸 다 합친다 해도 말이야 아니 뭐라구요?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또 이렇게 되묻..
나는 배웠다 / 오마르 워싱턴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을 받는 일은 그 사람의 선택에 달렸으므로 나는 배웠다 아무리 마음 깊이 배려해도 어떤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
처음 출근하는 이에게 / 고두현 잊지 말라. 지금 네가 열고 들어온 문이 한 때는 다 벽이 였다는 걸. 쉽게 열리는 문은 쉽게 닫히는 법, 들어올 땐 좁지만 나갈 땐 넓은 거란다. 집도 사람도 생각의 그릇만큼 넓어지고 깊어지느니 처음 문을 열 때의 그 떨림으로 늘 네 집의 창문을 넓혀라. 그리고 창가에..
南江가에서 / 박재삼 (1933-) 강바닥 모래알 스스로 도는 晉州南江 물 맑은 물갈이는, 새로 생긴 혼이랴 반짝어리는 晉州南江 물빛 밝은 물 같이는, 사람은 애초부터 다 그렇게 흐를 수 없다. 강물에 마음 홀린 사람 두엇 햇빛 속에 이따금 머물 줄 아는 것만이라도 사람의 흐르는 세월은 다 흐린 것 아니..
밤바다에서 / 박재삼 (1933-)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質定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天下에 많은 할 말이, 天上의 많은 별들의..
고름짜기 / 문병란 어릴 적 고름이 든 종기를 나는 아파서 끙끙대며 만지기만 하고 짜지를 못했다. 고름은 피가 썩은 것이고 고름은 결코 살이 안 된다고 어머님께선 감히 선언하셨다. 손만 살짝 닿아도 엄살을 떠는 내게 어머님께선 악창까지 나와야 낫는다고 발끈 눌러 버렸다. 전신의 충격, 눈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