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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위의 집 / 김진경 (1953-) 기차는 이 간이역에서 서지 않는다 오직 지나쳐지기 위해 서 있는 낡은 역사 무언가 우리의 생에서 지워지고 있다는 표시 시간 위의 집
선암사에서 시 쓰기 / 박남준 (1957-) 선암사에 갔습니다. 구례을 지나 산동을 지나 조계산 선암사 가는 길가엔 봄날의 햇살을 터뜨리면 저러할까 노오란 산수유꽃빛 처연해 보입니다. 문득 가까이 혹은 멀리 여기저기 산자락에 희고 연붉은 매화꽃, 사태처럼 피어나서 차창을 열지 않아도 파르릉 거리..
저문 외길에서 / 박남준 (1957-)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져가는 것 그는 모르는지 길 끝까지 간다 가는데 갔는데 기다려본 사람만이 그 그리움을 안다 무너져내려본 사람만이 이 절망을 안다 저문 외길에서 사내가 운다 소주도 없이 잊혀진 사내가 운다 출전: 창비시선 138, 박남준 시집 <그 숲에 새를 ..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 박남준 (1957-) 나 오래 침엽의 숲에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감각을 곤두세운 숲의 긴장이 비명을 지르며 전해오고는 했지. 욕망이 다한 폐허를 택해 숲의 입구에 무릎 꿇고 엎드렸던 시절을 생각한다. 한때 나의 유년을 비상했던 새는 아직 멀리 묻어둘 수 없어..
님이시여! 조국은 지금 흐느낍니다 / 정호승 (1950-) 님이시여 그동안 그 차가운 바다 속에서 얼마나 추우셨습니까 그동안 그 얼마나 모래알 같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님께서 목숨 던져 사랑한 조국은 지금 흐느낍니다 백령도도 흐느끼고 연평도도 흐느끼고 마라도와 울릉도와 독도도 어깨를 ..
양로원에서 / 박경순 전철 4호선 동작역에서 발견한 시 걸어 들어왔다가 차 타고 나가면 그만인 인연 죽음은 잠만 자면 늘 옆에서 기웃거려 가슴 조이는데 풀썩이는 쌈짓돈은 창 밖 나갈 꿈만 꾼다 이 시는 지하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다 발견한 시인데 짧고 묘사가 재미있어 여기 소개한다. 잠시 이 ..
직업 / 천양희 (1942-) 출전: 창비시선 179 <오래된 골목>, 창작과비평사, 1998 내 생의 업 중에 큰 업이 詩業이지 하다가도 시가 밥 먹여주냐, 고 시답잖게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밥도 안 되는 그걸로도 업이 될까 싶다가도 누가 나더러 그 시 참 좋데요, 할 때마다 나 혼자 감동 먹어 시로써 배부른..
[조시] 스님, 우리들의 법정 스님 / 천양희 (1942-) 출전: [법보신문 1040호]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라 하시더니 우리 곁에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놀라운 생명의 신비라 하시더니 하루 하루를 충만하게 살수록 깨어 있으라 하시더니 소중한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 하시더니 멀리 가려면 짐이 가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