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
(시) 소나무에 대한 예배 - 황지우 (1952~ )현대시/한국시 2024. 1. 9. 17:00
아래의 詩는 오늘 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소나무에 대한 예배 - 황지우 (1952~ )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지표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건목(建木);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
(시) 희망에 대하여 - 이상국 시인(1946-)현대시/한국시 2024. 1. 8. 23:45
아래의 詩는 오늘 아침 에서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詩이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희망에 대하여 - 사북에 가서 - 이상국 시인 그렇게 많이 캐냈는데도 우리나라 땅속에 아직 무진장 묻혀 있는 석탄처럼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을 다 써버린 때는 없었다 그 불이 아주 오랫동안 세상의 밤을 밝히고 나라의 등을 따뜻하게 해주었는데 이제 사는 게 좀 번지르르해졌다고 아무도 불 캐던 사람들의 어둠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섭섭해서 우리는 폐석더미에 모여 앉아 머리를 깎았다 한번 깎인 머리털이 그렇듯 더 숱 많고 억세게 자라라고 실은 서로의 희망을 깎아주었다 우리가 아무리 퍼 써도 희망이 모자란 세상은 없었다
-
(시) 겨울 초대장 – 신달자 시인(1943-)현대시/한국시 2024. 1. 8. 23:40
겨울 초대장 – 신달자 시인 당신을 초대한다.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당신. 그 빛나는 눈으로 인생을 사랑하는 당신을 초대한다. 보잘 것 없는 것을 아끼고 자신의 일에 땀 흘리는, 열심히 쉬지 않는 당신의 선량한 자각을 초대한다. 행복한 당신을 초대한다. 가진 것이 부족하고 편안한 잠자리가 없어도 응분의 대우로 자신의 삶을 신뢰하는 행복한 당신을 기꺼이 초대한다. 눈물짓는 당신. 어둡게 가라앉아 우수에만 찬 그대 또한 나는 초대한다. 몇 번이고 절망하고 몇 번이고 사람 때문에 피 흘린 당신을 감히 나는 당신을 초대하려 한다. 출발을 앞에 둔 자. 어제까지의 시간을 용서받고 새로운 시작에 발을 떼어놓는 당신을 나는 빼어 놓을 수 없다. 사랑을 하는 사람, 그 때문에 잠을 설치는 사람. 신의 허락으로 일생에..
-
(시) 새해 새 아침은 - 신동엽 시인(1930-1969)현대시/한국시 2024. 1. 7. 22:14
새해 새 아침은 - 신동엽 시인 새해 새 아침은 산너머 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 새해엔 아내랑 꼬마아이들 손 이끌고 나도 그 깊은 우주의 바다에 빠져 달나라나 한 바뀌 돌아와 봤으면, 허나 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의 눈빛 속에서 구슬짓는다. - 창비에서 펴낸 창비시선 20, 신동엽 시선집, 중에서 -
-
(시) 내가 할 일 – 이오덕 선생(1925-2003)현대시/한국시 2024. 1. 3. 22:23
아래의 詩 "내가 할 일"은 신년호에 들어가면 좋을 듯한 느낌을 받은 詩이다. 이 詩역시 이오덕 先生의 추모 시집 에 나오는 詩이다. 전문 가운데 일부만 소개한다. 내가 할 일 – 이오덕 선생 (중략) 하느님, 올겨울에도 저는 토끼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 못 살렸습니다. 새 한 마리 살린다는 것은 이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 아닙니까? 이제부터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몸 하나 살리는 일 내 몸 하나 죽이지 말고 살려 내는 일 그것뿐인 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내 몸 하나 죽이지 말고 살리는 이 일이 또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네요! 하느님, 저는 오늘부터 또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새 인생을 시작합니다. 세 번째 돌아온 윤회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아침 해 같은 마음 가을 하..
-
(시) 인류의 희망 - 이오덕 선생 (1925-2003)현대시/한국시 2024. 1. 3. 11:22
인류의 희망 - 이오덕 선생 어린이의 말은 시 어린이의 몸짓은 시 산새처럼 재잘거리는 피라미처럼 파닥거리는 팔팔 살아 있는 어린이는 생명 바로 그것 생명은 거짓이 없다 생명은 꾸미지 않는다 생명은 자연 생명은 바로 하느님 생명을 짓밟는 자 누구냐 생명을 속이는 자 누구냐 생명을 가두는 자 누구냐 생명을 해하는 자 누구냐 생명이 서로 적이 되어 싸우게 하는 자 누구냐 부끄러워라 우리 어른들 어린이에게 말하는 자유를 주자 어린이에게 뛰노는 자유를 주자 그리하여 그 생명의 시를 읽고 우리 모두 어린이로 돌아가자 아아, 어린이 어린이를 살리는 일 이것만이 인류의 희망이다. (1990년대 초)
-
(시) 저 아이에게 상을 주셔요 - 이오덕 선생(1925-2003)현대시/한국시 2024. 1. 3. 11:02
어린이를 많이 사랑하고 교육을 위해 獻身했던 이오덕 선생의 10주기 추모 시집을 읽다가 골을 때리는 詩라서 아래에 적어 본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저 아이에게 상을 주셔요 - 이오덕 선생 선생님, 저기 저 조그만 아이를 보세요. 이를 악 물고 달려가네요. 맨 꽁지에 가면서 저렇게 힘을 내고 있네요. 저 아이는 상을 타려고 앞의 아이를 이기려고 달리는 게 아니지요.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 계신다고 동무들이 보고 있다고 힘껏 달리고 있겠지요. 저 아이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자랑스리 달려가는 맨 앞의 아이보다 훌륭하게 보여요. 옆의 아이를 밀치고 가는 아이보다 낫지요. 저 아이는 꼴찌라도 부끄럽지 않을 테지요. 저 아이 때문에 상을 타는 아이가 있지요. 선생님, 저 아이에게 상을 주셔요. (199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