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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사과꽃 길에서 나는 우네 – 고재종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3. 11. 10:52
사과꽃 길에서 나는 우네 – 고재종 시인 사과꽃 환한 길을 찰랑찰랑 너 걸어간 뒤에 길이란 길은 모두 그곳으로 열며 지나간 뒤에 그 향기 스친 가지마다 주렁주렁 거리는 네 얼굴 이윽고 볼따구니 볼따구니 하도나 빨개지어선 내 발목 삔 오랜 그리움은 청천(靑天)의 시간까지를 밝히리 길이란 길은 모두 바람이 붐비며 설렌다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957년 전남 담양 출생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에 시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93년 제11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음 2001년 제16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집 ,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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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2. 26. 20:43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시인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뭇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집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을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 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깻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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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편지-시골에 있는 숙에게- 신경림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2. 26. 20:41
편지 -시골에 있는 숙에게- 신경림 시인 신새벽에 일어나 비린내 역한 장바닥을 걸었다 생선장수 아주머니한테 동태 두 마리 사 들고 목롯집에서 새벽 장꾼들과 어울려 뜨거운 해장국을 마셨다 거기서 나는 보았구나 장바닥에 밴 끈끈한 삶을, 살을 맞비비며 사는 그 넉넉함을, 세상을 밀고 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생각하느니보다 삶은 더 크고 넓은 것일까, 더 억세고 질긴 것일까 네가 보낸 편지를 주머니 속으로 만지면서 손에 든 두 마리 동태가 떨어져나갈 때까지 숙아, 나는 걷고 또 걸었구나 크고 밝은 새해의 아침해와 골목 어귀에서 마주칠 때까지 걷고 또 걸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