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 12

(詩) 11월의 나무 - 황지우 시인

11월의 나무 - 황지우 시인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잇다 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현대시/한국시 2022.12.07

(詩) 벽공무한 - 이성희 시인

벽공무한(碧空無限) - 이성희 시인 가을은 멀어지면 옵니다 멀어지는 것들의 등은 벌써 남빛으로 젖어 있네요 그대 멀어지면서 오세요 골목 어귀의 선술집에 등이 켜지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내부에 푸른 별이 켜집니다 저녁이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 다른 별의 시간을 삽니다 낙엽의 거리에서 오랫동안 찾던 단어 하나를 놓아버린 사람은 별과 별 사이 아득한 허공을 헤매일 것입니다 남빛 시린 허공으로 그대 깊어져서 오세요 - 시집 (솔, 2013년)

현대시/한국시 2022.12.07